진주 마라톤 대회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아름다운 자연 경치였던 것 같습니다. 큰 댐과 산 사이의 작은 도로를 달려가는 구간이라 산의 풍경과 댐의 운치를 같이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서울에서 달리는 대회가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의 위압감이 느껴진다면, 작은 도시에서 달리는 대회는 전원의 푸근함이 반겨준다고나 할까요?
이런 곳에서는 대회에서 제공해 주는 음식들도 특색이 있습니다. <진주 장생도라지>라는 이름이 붙여진 술이 개인당 두 병이 주어졌습니다. 저희는 미처 먹어보지 못했지만 '막걸리와 국밥'도 제공되어 일치감치 짧은 코스로 대회를 마치신 어르신들은 더 흥에 취하신 시간을 가지기도 하셨습니다.
저에게 조금 특별한 계기였다면, 다른 대회는 남편과 둘만이 달렸는데 여기에서는 남편 동호회분들과 같이 참여를 하였다는 점입니다.
'함께 뛰고 나누고 격려하는 즐거움'을 제가 여기서 진득하게 체험했다라고나 할까요? 화기애애, 시끌벅적...
서로 챙겨주고 격려하며 더 잘했든, 더 못했든, 이렇게 나누는 재미가 큰 줄 몰랐습니다. 결과가 기대보다 낮으면 낮은 대로 상대방을 축하해 주고, 생각보다 잘 나오면 축하를 받으며 함께 으쌰으쌰 할 수 있었습니다.
6. 대구 알몸 마라톤 대회
대구 알몸 마라톤 대회는 정말 특색 있고 활기 넘치는 대회였습니다. 내 생애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강하게 각인된 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참가자수는 적게 신청을 받았지만 그 속의 열기는 다른 그 어떤 대회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살을 에이는 추위와 강바람 속에서도 맨살을 드러내며 뜨거운 마음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 대회는 저희 가족이 두 번째로 참가한 가족마라톤이기도 했습니다. 대회가 1월 한겨울에 열렸기에 저희는 너무 추워서 옷도 두툼하게 입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목도리와 장감으로 무장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장한 신체의 어른들 가운데서는 짧은 하의 운동복만 입고 뛰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고 여자분들 가운데서도 스포츠 브라로 높은 의지를 드러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 대회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특색 있는 분장이었습니다. 아이언맨으로 완전 변신을 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긴 한복을 입고 뛰시는 여인, 맨살에 개성 있는 글씨와 그림으로 꾸미신 분들, 욕조 튜브를 머리에 끼우고 맨발로 뛰셨던 러너분들... 정말 참신했습니다. 뛰는 재미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훨씬 압도적이었다고 말씀드려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추위에 날고생을 시킨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던 아이들도 이런 구경의 쏠쏠함을 함께 만끽했다고나 할까요?
"엄마, 아빠는 분장 안 해?"
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저에게 다음 대회 때의 의상을 급 심각하게 고민하는 과제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모든 참가자분들이 식사하실 수 있게 떡국이 제공된 것도 작지 않은 감동이었습니다. 추위에 벌겋게 변한 살을 조물락거리며 호호 입김을 불더라도 뜨끈한 국물 한 그릇에 스르륵 녹일 수 있었습니다. 맛은 당연히 최고였고요. 배고픔과 추위에 뛰고 난 허기짐까지 더해졌는데 그 어떤 진수성찬에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고 개성이 워낙 강했기에 다른 대회의 참가는 연기하거나 보류하더라도 '알몸 마라톤 대회'는 매년 꼭 참가하자고 남편과의 합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7. 대한민국 최고의 대회 '동아 마라톤'
'가장 큰 열기를 느껴보려면 가장 큰 대회에 나가라'
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많은 선수들, 북적거리는 도로, 끝없이 펼쳐진 인파... 건강한 신체로 거뜬하게 달려 나가는 러너들... '축제의 장'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가 저절로 인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 대회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대회 참가 물품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짧은 티와 긴 잠바, 그리고 짧은 티와 긴 티셔츠, 이렇게 두 개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대회만 잘 준비한다면, 그래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유종의 미만 거둘 수 있다면 메이저 대회는 그것 자체가 풍기는 아우라가 있습니다. 비록 저는 아직 끄트머리 선수지만 조금 더 가깝게, 조금 더 유능한 선수로서 레이스에 서고 싶습니다. 이 욕심이, 더 잘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달려야 하는 길 위로 다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