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최고의, 제일 잘하는 모습에 포커스를 둘 때가 많습니다. 공부도, 부자도, 외모도, 실력도... 운동도 빠질 수 없겠지요. 연일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지만 일인자가 갖게 될 엄청난 부와 관심, 여유와 물질적 혜택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럽기도 하고 그 길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일 높은 곳의 그들의 존재는 자신의 일이 잘 풀리고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기폭제가 되어 가속도가 붙게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버둥을 치며 나름 최선을 대해 노력하는데도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기만 하는 현실이 느껴진다면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만 가지게 할 가능성도 농후한 것이고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선두의 모습은 오히려 발견하기가 쉽습니다. 각종 매체와 도구에서 연일 홍보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광고가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라 개개인도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보와 결과를 외부적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관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알면 알수록 뒤에 따라올 경제적 보상이 두둑해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꼴찌? 선두와 반대되는 개념에서의 꼴찌는 선뜻 대입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외모적으로도, 능력으로도... 드러낼 필요도 없고 드러낼 마땅한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주홍 글씨' 인양 수치심과 모멸감을 줄 수도 있기에 우리는 은연중에 이것은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 꼴찌가 드러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운동 경기'입니다. 드러나지만 웬만하면 그리되고 싶지 않은 자리입니다. 누구나 확인할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선두주자를 환호하며 지켜볼지언정 마지막 주자를 보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 내 생애 잊지 못할 풀코스 마지막 주자의 모습 -
(경주 마라톤)
풀코스 참가를 앞두고 운동 겸 기량 점검 차원에서 저는 하프 코스를 몇 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대회보다 기록이 잘 나오기도 하고 더 못 나오기도 하였지요. 연습을 할 때도 20km 가까이 비교적 순탄하게 연습이 될 때가 있는가 하면 5km 뛰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걷다가 쉬다를 반복하다가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어쩜 이리 몸 상태가 고무줄로 늘였다가 줄이듯이 왔다 갔다 했을까요.
경주 마라톤에 참석하여 하프코스는 무사히 완주했지만 저희 차의 주차자리가 문제였습니다. 아직 풀코스 경기가 진행 중이었기에 도로가 통제 중인 곳이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왕 움직일 수 없게 된 거, 저와 남편은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산 뒤 버스정류장에서 앉아 지나가는 풀코스 선수들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앞서는 선두그룹을 볼 때는 저절로 경탄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하프코스도 겨우 마쳤는데 아직도 쌩쌩하게 빠르게 달려 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경외심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외의 모습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각 외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참가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죠. 남편에게 누누이 강조하며 들었던 자세도 전혀 상관없이 독특한 자세로 뛰는 분들도 종종 계셨습니다. 신기한 몸 동작도 놀라웠지만 아직도 뛰고 계시고 결국에는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마라톤 '풀코스' 의 마지막 주자 모습
그렇게 한참을 선수들을 지켜보다가 저희는 마침내 풀코스의 마지막 주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요? 경찰차 2대, 구급차 2대. 그리고 도로통제가 해제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차들과 버스들이 천천히 뒤에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인 것도 부끄러울 것 같은데 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만약 제가 그 상태에 놓인다면 저는 수치스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포기하고 말지.
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열 번, 백 번을 생각해도 저는 풀코스의 마지막 주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뛰고 계시는 그분은 포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뛰고 계셨습니다. 배번이 옷에 붙어져 있었기에 우리는 경기 종료 후 그분의 기록을 확인해 보았는데 결국 완주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와~
어쩜~~
정말 대단해~~
멋지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감탄어들을 쏟아내고 싶었습니다. 1등도 멋집니다. 하지만 꼴찌지만 1등 못지않게 멋지게 끝을 내신 그분을 칭찬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1등은 많은 이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의기양양하게 결승점에 들어오지만 마지막 주자는 다릅니다. 더 이상 누군가도 남아 있지 않다는 부담감과 그래도 완주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다른 이들의 조금은 다른 시선들을 감내하며 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멋지셨습니다. 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이 저분을 끝까지 뛰게 만들었을까요? 어떤 강한 정신력이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했을까요? 저분은 비단 마라톤에서만 이런 모습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와중에 힘들더라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바지에 묻은 먼지를 무심하게 털어내며 가던 길을 묵묵하게 다시 걷지 않으셨을까요?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구급차와 경찰차, 버스와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완주를 끝내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 선수의 발과 몸과 움직임을 주시하며 따라붙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신경이 쓰였더라도 자신의 목표와 의지에 더 중요성을 부과하며 극복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작은 조언과 훈계에도 파르르 떨며 마음의 동요를 겪었던 일들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나를 믿고 바라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더 예민하게 의식했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주자를 보며 작지만 새로운 결심을 해보려 합니다. 내가 진정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시선은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선두인지 끝쯤 인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저 해내면 된다고. 내가 목표한 그곳에 도달할 때의 성취와 환희만 생각하면 된다고 말이지요. 그 경험이 한층 더 성숙시킬 것이고 저는 이후에는 더 큰 꿈을 다시 꾸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