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몇 개 참석해 보니 각각의 대회의 분위기가 달랐고 저에게 실려오는 감흥도 다른 빛깔의 여운이었음을 브런치북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기록을 확인하는 일이 최우선 중요한 과제였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 당시에 분위기와 나의 느낌도 소중한 대회의 결실 중 하나라고나 할까요? 그때는 놓쳤지만 과거로 돌아가 복기해 보는 지금, 제가 무심코 던져버린 소중한 기억의 보석들을 다시 재배열해보고자 합니다.
1. 벚꽃 합천 마라톤의 5km의 가족 참가
처음 달렸던 5km의 가족마라톤은 마라톤이긴 했는데 어수선한 레이스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이 지쳐 더 많이 처지지 않았는지, 초등 6학년인 첫째는 도착해서 잘 쉬고 있는지...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아빠와 같이 달리고 있을 다른 쌍둥이를 찾는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섯 명이 모두 레이스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여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여기서는 떡보다 콩고물에 더 많은 관심과 재미가 있었던 대회였습니다. 아이들은 무료의 팝콘과 솜사탕을 받아먹으며 신이 났었고 긴 풍선으로 칼을 만들어주는 피에로 아저씨를 만나는 일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다섯 명이 출전하였기에 완주 꾸러미도 다섯 개였는데 쌀이 들어있어 반겼던 기억이 납니다. 기록도 순위도 저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참여했고 완주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결실이었으니까요. 이때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말미암아 저희 가족은 정기적으로 마라톤에 참석하며 추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 영남일보 마라톤 대회 (첫 하프코스 출전)
첫 하프코스 출전이자 혼자서 제대로 달려보는 첫 대회였습니다. 제 이름이 적힌 배번을 받는 설렘이 가장 큰 때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버리지는 않았지만 '첫 완주'라는 사실에 의미부여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다는 즐거움에서 저도 신이 나서 방방 뛰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이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면 폴짝 뛰며 점프하고,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남편은
"이 아줌마, 아직 힘이 남아 도네~"
라며 같이 즐기기도 했습니다. 끝나고 두부김치와 국수도 먹고, 홍보차원에서 방문한 주류회사의 맥주도 먹으며 완주의 기쁨을 오롯이 만끽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냈다는 보람의 교차에서 한껏 날아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던 마라톤이었습니다.
3. 풀코스 참가를 위한 기록을 남기다
- 달서하프마라톤 대회 -
11월에 열리는 서울 JTBC마라톤의 풀코스의 신청하려니 이제 기록이 문제였습니다. 풀코스 기록은 당연히 없었고 하프코스를 2시간 10분 이내에 뛰었다는 기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번 하프 코스 기록이 2시간 14분이었기에 4분을 당기면 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달려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길 위에서 고작 1분이라도, 그 시간을 당기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막상 기록이라는 부담을 안게 되니 방방 뛰던 마음이 물 먹은 솜뭉치마냥 가라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의 대회가 흥분과 설렘의 감정의 도취로 말미암아 기록이 잘 나온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라톤 대회의 신청이 통상 여유 있게 몇 달 전에 신청을 받던지라 행여나 인정받을 수 있는 기록을 내지 못한다면 난감한 상황에 놓일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꼭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슴에 꼭 누르고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달서하프 마라톤 대회는 길이 좋았습니다. 그 말인즉,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어 경사가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가파른 오르막이라도 만난다면 속도가 확 떨어지거나 걷기를 택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지형의 유리함이 더해져서 저는 2시간 5분이라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고 의기양양하게 대회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신청 가능한 기록을 얻지 못했다면 제가 얼마나 낙심하고 좌절했을지... 어휴..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4. 경주국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가기 전, 마지막 하프코스 참가였습니다. 몸 상태도 점검하고 예행연습을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멋진 경주라는 문화도시를 직접 뛰어본다는 기대감이 저를 사로잡았던 대회였습니다.
잘 뛰고 싶었던 마음과는 다르게 5km를 지나는 시점에 34분이라는 시간을 보는 순간, 최고 기록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며 '최선보다는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경주의 가을 단풍을 보고, 나무를 보고, 꽃을 보고,
큰 무덤들을 보고, 첨성대를 보고,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뛰고 있는 젊은이들의 패기를 보고,
여자 선수들의 멋진 패션을 보고,
남자 선수들의 열정을 보며 달렸습니다.
우리 조상의 수도였던 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장소를 뛰며, 바라보며, 느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강하게 각인된 사건은, 바로 풀코스 주자의 달리는 모습을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뛰는 분들, 걷는 분들, 잘 뛰는 분들도 계셨지만 힘든 다리를 끌며 작은 보폭으로 겨우겨우 이동해 가는 선수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선수분들이 많은 것도 꽤 놀랄만한 사실이었고요. 제가 다음 달에 '풀코스' 대회를 앞두고 보니 정말 '진정한 동병상련'이 따로 없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끝내고 싶을까?'
'그래도 결승선의 그 희열을 생각하며 참고 뛰시는 거겠지?'
제가 볼 때, 신체적 능력이 충분히 커버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많은 분들께 있어서 '풀코스 완주'의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