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모임에서 잠깐 짧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언니와 오늘 처음으로 둘이서 커피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제안은 내가 먼저 했다.
"언니, 시간 되시면 이번 주 금요일 커피 한잔해요."
그렇게 우리끼리만의 단독 시간은 마련되었다. 언니가 외형적으로는 귀여우시고,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말씀도 잘하는 이미지셨다. 언핏 이야기 속에서 들리는 자녀 이야기에도 최상위권으로 교육을 너무 잘 시켜놓으셨기에 나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완만하게 생활하시는 분이신 것 같았다.
그런데 3시간가량 이야기하니 그게 아니었다. 어린 소녀가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의 쓰라린 아픔부터 본인의 외롭고 힘겨웠던 삶을 나에게 건네셨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시자고 해도 안 내키면 일이 있다고 거절을 하거든. 그런데 신영 씨에게는 말을 자연스럽게 술술 하게 되네. 좋은 사람 같고 남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같아."
너무 솔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사실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믿으시기에 마음을 터놓으시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도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현재의 삶을 오픈하게 되었다.
"신영 씨가 사람이 좋아서 좋은 사람만 만나게 되나 봐."
이렇게 또 한풀 더 아름답게 색을 입혀 나를 바라봐 주셨다. 언니 또한 나를 밝고 긍정적이고 씩씩한 이미지로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을 하고 서로의 궤적을 오픈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의 공통점이 서로 통해서 일지 않을까?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밝은 모습, 활기찬 에너지를 표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쓸쓸함도 많이 느끼고 고민도 많이 한다. 감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유형이라 오히려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스타일이랄까.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내가 감내해야 할 감정과 생각들이 많은데 굳이 반가운 누군가를 만났을 때 표출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탁하고 그늘진 감정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오히려 텐션이 높고 말도 많이 하며 많이 웃는다. 소중한 시간으로 보고 귀한 인연으로 여기니 좋은 점이 많이 보여 스스로 즐거워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속 이야기를 꺼내면 경청한다.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것을 이겨내는 삶에 응원을 보낸다.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라.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 모두는 마음 어딘가에 외로운 공간이 있다. 가족이 있어도, 직장에 다녀도, 친구가 있어도, 무탈하게 삶을 살고 있는 듯이 보여도... 문득문득 고민이 생기고 자신만이 감내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감정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세상에서 살기 위한 치열한 생존 고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의 온도에 따른 갈등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꿈꾸는 자화상과 실제 모습과의 괴리에 따른 실망감일 수도 있으리라.
고민이 안 들 수는 없지만, 아픔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 뿐이다.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가급적 좋은 느낌을 갖고 그 기운을 채우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두려우리만큼 늪으로 빠져드는 듯해도 밝은 기운과 희망을 찾아 손을 뻗쳐 애써보는 것이다.
언니가 자신의 어두움을, 아픔을, 쓸쓸함을 이야기했을 때 나의 내면이 손을 내밀어 같이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공감하기에 따뜻하게 포옹하듯 눈과 귀와 입이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그 시간이 좋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어느 한순간, 내가 참 좋아했던 사람이 소개해 준 시가 있다. 오늘의 글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