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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독감

by 레모몬 Jan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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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아들을 둘 키우는 동료가 있다. 요즘 A형 독감이 유행인데, 초3인 큰아들이 독감 후유증으로 폐렴까지 앓게 되었다. 문제는 영어학원에서 1년 동안 숙제를 꼬박꼬박 하고 단어 시험도 잘 보고 해서 포인트를 5,000점이나 모았는데, 연말 행사 때 폐렴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데 있다. 그 영어학원에서는 연말에 그 포인트로 아이들이 사고 싶어 하는 학용품이나 작은 장난감등을 살 수 있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 행사에 가고 싶어 동동 거렸지만, 폐렴인데 가게 할 수도 없고, 초1인 그 집 둘째만 행사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집 둘째는 섬세한 성격의 형과 달리 배포도 크고 더 짓궂은 아이였다. 숙제도 잊어버리기 일쑤에 단어 시험 0점을 맞아도 전혀 기죽지 않는 성격으로 형은 5,000을 모았지만 본인은 600점을 겨우 모았다고 했다. 그런 동생만 그 학원의 연말 행사에 다녀왔다. 평소 싸우는 게 일인 형 앞에 그 600점을 털어 사온 학용품 하나를 던졌다고 한다. "니 거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형은 감동했고 지금은 하나뿐인 내 동생 모드로 동생을 엄청 아껴주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평화로운 관계가 언제까지 가느냐겠지만 말이다.

나도 독감 유행을 피하지 못하고 걸리고 말았다. 며칠간 고열에 시달렸고, 페라미플루와 해열제 수액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픈 바람에 약속 몇 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약속이 취소되었는데도 누군가는 죽을 보내주고 누군가는 밥 사 먹으라고 돈을 보내주고 또 배민 상품권도 보내주었다. 나는 초3 형아처럼 감동모드이다. 나도 누가 아프다고 하면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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