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인생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만나자고 했다
선술집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분위기 파악했는지
제법 다소곳하다
인생에게
너 내가
좀 살만하다고
느끼면 왜
쓴맛 한 꼬집씩
집어넣는 거냐?
묻자
아무 대답 없이
술 한잔 따라준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그 표정은 알 수 없다
이번엔
인생의 눈치를 살피며
나 겉으론 편해 보여도
사실 조금도 쉴 틈 없이
달려왔잖아
나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았지?
취한 척 묻자
그제야 끄덕끄덕
먹태하나 쥐어주고
또 한 잔
또르르 따라준다
인생은
앞으로의 부탁이 담긴
내 술 한 잔 받아먹고
일어서더니 천천히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내 인생이랑
술 한잔 했다
*시에 덧붙여 -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어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물은 뜨겁고 땀은 흐르고 쉴 새 없이 일하는 내 모습에 갑자기 내 인생을 소환하고 싶었다. 잠시 엉뚱한 상상이 일의 힘듦을 덜어주었다. 바바리를 입고 중절모를 쓴 내 인생, 그 얼굴을 볼 수 없어 더욱 궁금하다. 나는 가끔 이런 엉뚱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 현실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