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IFStory>
선악과, 아담과 이브의 비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 창세기 2:17
이 구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전제를 발견하게 된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은 선악을 알면 안 된다.
선악을 알면 죽는다.
도대체 왜 죽는가?
그 질문에서 출발해 하나의 상상을 해본다.
이 모든 것은 신들의 역할 놀이가 아니었을까?
신들이 모여 놀고 있다.
그들 중 한 신이 인간의 역할을 맡는다.
이 역할놀이에는 금기가 있다.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된다.
먹는 순간, 인간 역할을 벗고 본래의 신으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놀이는 중단된다.
마치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없어진 것처럼.
창세기 3장에선 이렇게 기록된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았다.” (3:7)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 (3:10)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3:22)
벗음과 앎.
이 두 단어가 인간의 조건을 상징한다.
‘벗다’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사람이 자기 몸 또는 몸 일부에 착용한 물건을 몸에서 떼어 내다.
즉, 무언가를 떼어냄으로써 ‘자기’를 자각하는 상태.
몸을 가리고 있던 것, 또는 정신을 덮고 있던 것을 벗겨냄으로써
수치심이 생기고, 인간은 ‘내가 나인 줄’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자.
모두가 옷을 입고 있는 곳에서 나 혼자 벗고 있다면?
→ 수치심, 불안, 두려움
모두가 벗고 있는 곳에서 함께 벗고 있다면?
→ 수치심 없음
이 차이가 바로 ‘선악’이다.
선악은 도덕의 기준이 아니라, 수치심의 자각이다.
그 수치심은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신과 대화하던 아담과 하와는,
벗음을 통해 자신이 신이 아님을 자각한다.
그 순간, 인간이 된 것이다.
에덴에서 추방된 그들은
이제부터 ‘앎’을 추구하는 존재가 된다.
‘앎’은 신이 금지한 것이 아니라,
신이 던진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신과 대화하지 못한다.
영은 보이지 않고, 대신 정신과 마음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었다.
영혼이 벗겨지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부끄러움’이라 부른다.
정신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앎과 벗음,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이미 선악과를 먹은 자들이다.
벗었고, 알고 있고, 그래서 부끄럽다.
그것이 인간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순간,
인간은 배움과 앎의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그것 없이는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완전한 앎의 상태에 도달할 때,
인간은 다시 낙원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부처와 예수도 그러했듯,
이 상상은 끝나지 않는다.
상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처음, 그리고 다시 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