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남자(1) 신원 미상 옆집 남자
::뜨거운 감자-진취적인 그녀::
1
홍대 앞에서 자취할 때였다. 경의선숲길 부근 골목 어느 주택에 살았는데, 일 년 넘게 지내면서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바로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원룸, 투룸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다들 몇 개월 혹은 1, 2년 정도 살다 가는 건지. 학생부터 직장인, 프리랜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출퇴근 시간이 제각각이라 그런 건지. 몇 번 마주치고도 서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건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도 동네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외롭다면 외로울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자유로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누구 마주칠 일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편하고 즐거웠다.
2
코로나 때는 식당, 술집, 카페는 물론 헬스장도 밤 10시면 문을 닫았다. 보통 퇴근하고 헬스장에 가면 오후 8시쯤이었고, 항상 마감 시간까지 운동을 했다. 코로나라 어차피 약속도 없고, 동네에 친구도 없고, 그때는 한참 운동에만 빠져 있었다.
헬스장에도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눈치 안 보고 잔뜩 땀 빼며 운동을 했다. 보풀 잔뜩 일어난 복장에 앞머리는 핀으로 딱 꽂아서 올리고 '으어' 소리를 내면서 운동만 실컷 했다.
그날은 퇴근을 늦게 해서 유산소 운동만이라도 30분 정도 했다. 트레드밀을 뛰다가 헬스장 문이 닫기 5분 전에 운동을 마쳤다. 그리곤 운동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집까지 뛰어갔다. 횡단보도 신호가 걸릴 땐 제자리 뛰기를 하며 심박수를 유지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땐 에너지가 넘쳐 돌았나 보다.
두 눈을 못 뜰 정도로 땀이 흘러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실 처음에는 음악을 크게 듣고 있어서 못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 내 속도에 맞춰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어떤 남자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에어팟 한쪽을 빼며 ‘저요?’라고 말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 걸으며 말을 걸었다.
“헬스장에서 맨날 봤잖아요. 이쪽 살아요?”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우리 헬스장에 그 남자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느라 달리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대충 대답하고 얼른 다시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자꾸 내가 가는 골목마다 내 뒤를 계속 따라왔다. 설마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정말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왜 자꾸 따라오냐고 말했다.
“저도 집 가는데요?”
그러면서 손가락을 가리킨 곳이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이었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수법이지? 개인정보 유출이 돼서 우리 집 주소를 미리 알고 그러나?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도망갈까 오만가지 고민을 했다.
“혹시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네. 이상하죠. 당연히 이상하죠.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이 누가 봐도 이상하게 따라오는데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잠시 억울해하다가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죄송해요.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출발하세요. 저 먼저 빨리 집에 갈게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나는 근처 편의점에 갔다가 5분 정도 기다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
3
“저 따라왔어요?”
우리 집 바로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뭐지? 세상은 참 무섭다. 나는 그의 앞에 서서 벙쪄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보고 자신을 스토킹 했냐며 오히려 나에게 추궁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 옆집에 살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피우다 나를 만난 것이다.
그는 옆집남자였다.
정말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집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건물이 1번지라면 우리 집 앞에 있는 건물은 2번지, 그는 3번지에 살았다.
이게 무슨 우연인지 운명인지 인연인지. 그는 나랑 같은 헬스장에 다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바로 옆 집에 사는지는 몰랐다며 반가워했다.
나는 그의 말을 안 믿었다. 알겠으니까 빨리 집에 가서 불 켜는 모습까지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씩 웃더니 알겠다며 우리 집 옆 건물로 들어갔다. 웃으니까 더 무서웠다.
1층. 2층. 3층.
계단 불빛이 차례로 켜졌다.
3층 어느 창문에 노란 불이 켜지더니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집 들어가세요~“
별 일이 다 있다.
신기하고 재밌다기보다 무서웠다. 혼자 살다 보니 그땐 사소한 일에도 의심을 하고 더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4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생김새가 문제다. 아예 범죄자처럼 생겼다면 처음부터 정말 경계했을 텐데, 애매하게 잘생겼다. 하마터면 그와 운명이라고 느낄 뻔했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창문을 살짝 열어서 옆 건물을 살폈다. 우리 집이 그의 집에서 보이는 위치가 아닐지 걱정됐다. 그는 3층에 살고, 나는 2층이라 방향에 따라 내가 보일 수도 있었다. 나는 커튼을 탁 치고 밝은 전등도 다 꺼버렸다.
의도치 않게 옆집 남자를 알게 되어 괜히 불편해졌다. 이제 집 앞에 쓰레기 버릴 때도 앞머리 못 까고 나가겠네. 헬스장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구나...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하나?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