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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자취하고 잘취해요

두 번째 남자 이야기(1) 잡지사 에디터, 30세

by 무아예요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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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 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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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독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홍대에 자취방을 구했다. 홍대는 내가 더 취향껏 살기에 좋은 동네였다. 사실 홍대가 아니었더라면 자취를 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자취를 하고 싶다기보다 그냥 홍대에 한 번쯤은 살고 싶었다.


역시나 홍대는 내 취향에 취하기 좋은 동네였다. 집 앞을 걷기만 해도 영화관, 책방, 옷 가게, 액세서리 가게, 소품 숍까지 없는 게 없다. 그중에서도 내 취향의 음식, 커피, 인테리어, 음악, 술. 그 모든 것들이 매번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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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도 온통 내 취향으로 가득했다. 처음엔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만 쏙쏙 가져왔다. 그리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사서 들였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들로만 구비했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집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화장실이 작은 것 빼고). 특히 ‘나의 공간’을 대표하는 몇 가지가 있었다. 책꽂이, 인센스 스틱, 그리고 술.


밖에서만 마시던 술을 이제는 집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위스키, 고량주, 진, 럼, 막걸리. 술집처럼 재고가 비지 않는지 늘 확인하며 채워두었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혼술을 했다. 배달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 때문에 안주도 직접 요리했다. 파스타, 카레, 닭고기덮밥, 치즈 플레이트, 과일. 접시 하나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자주 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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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 귀찮은 일을 하나하나 맞춰줄 사람을 찾느니 그냥 모두 혼자 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냥 혼자가 좋았다.


연애도 하지 않았다. 내 취향을 설명하고, 내 취향에 맞추게 하거나 내 취향이 아닌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게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면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럼에도 취향이 있으면 때로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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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가 개봉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다. ‘예전에는 개봉하는 날 맞춰서 봤는데, 나 많이 변했네~’ 생각했다. 근처 연희동에 ‘라이크 시네마’라는 독립 영화관이 새로 생겨 일부러 찾아갔다. 근처에 독립 영화관이 있다니, 역시 홍대는 참 좋은 동네다.


아직 개관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평일이라 그런지 영화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영화가 시작했는데도 관객은 나 혼자였다. 덕분에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것처럼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원래라면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럭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외로웠다. 특히 홍상수 영화는 다른 관객들과 함께 보며 웃는 맛이 있어서 몇 명은 있길 바랐나 보다.


영화는 꽤 재밌었다. 어쩐지 스산하더니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비를 피해 카페를 가자니 그 와중에 아무 데나 가긴 싫어서 근처 괜찮은 카페를 검색했다. 좀 멀었지만 이 정도는 맞을 수 있겠다 싶어 뛰었다.


카페는 꽤 근사했다. 비 오는 날에는 라떼라고 생각하곤 라떼를 시켰다. 사실 나는 라떼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 카페의 라떼는 정말 맛있었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행복했다. 운 좋게도 금방 비가 그쳐서 집까지 걸어갔다. 그이고 혼자 알차게 보낸 그날을 일기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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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오지 않고 뭔가 하기엔 애매한 새벽이 되었다. 나는 아무 남자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친하지도 않고 연락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내 전화를 이유 없이 받아줄 것 같았다. 역시나 그는 왜 전화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오늘 내가 얼마나 알찬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너 외로워?”


곧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곤 어쩌면 지금 내가 외로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재밌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집에 올 때까진 몰랐다. 오늘처럼 알차게 하루를 보낸 날은 일기에 적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오늘 내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확실하게 남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그때 내가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몰려오는 그 기분, 그 느낌, 그 감정.


이게 외로움이라면, 난 외로운 게 맞았다.


우리는 어느새 두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글을 읽고, 쓰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또 나처럼 독립 영화관을 일부러 찾아다니고, 독립 책방에서 신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남자를 처음 봤다.


그는 기타를 꺼내 연주를 들려주었고, 그렇게 밤새 통화했고, 바로 다음 날 만나서 또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만나고, 또 취향을 나누고, 또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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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이 같다는 이유로 연애를 하게 됐다.


주말마다 만나 데이트를 했다. 매번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와인바나 엘피바에 가서 맛있는 걸 먹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도 함께 영화를 봤다. 각자 집에서 ’왓챠 파티’로 영화 <원스>를 틀어놓고 실시간 채팅을 나누며 감상을 나눴다. 그가 아니면 누가 나랑 이렇게 시간을 보내주겠나. 단지 내 취향에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지금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취향이 같은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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