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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불변의 법칙

다섯 번째 남자(1) 요리사, 29세

by 무아예요

::브라운아이드걸스 -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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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에 취해 자고 있는 D를 앞에 두고 J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눴다. 술병을 다 비우고 우리는 D를 먼저 집에 보내고 따로 2차를 가기로 했다.


D를 살짝 흔들어 깨워보니 여전히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해있었다. D를 금방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택시를 이미 잡았는데 D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D는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고집도 엄청 셌다.


“나 먼저 집에 보내고 너네끼리 놀게? 너네 갈 때까지 나도 안 가.”


택시가 도착하고 나서야 D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 가는 대신 조건이 있었다.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D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곤 택시를 태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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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J와 정말 단 둘이 되었다.


새벽 2시. 늦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다. 여전히 홍대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술집들은 닫았거나 이미 만석이었다.


우리는 상수동 삼거리포차 즈음부터 홍대 놀이터, 홍대입구역까지 걸었다. 술집을 10군데는 넘게 들렀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어느 새부터는 술집 문을 열면서 ‘자리 없죠? 네~’ 말하곤 바로 닫았다. 그러다 너무 추우면 인생네컷을 찍으러 들어갔다. 찍는 사진마다 다 마음에 들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 1년 정도 사귄 커플 같았다. 사진으로 보니 우리가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남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


끝내 술집을 아무 데나 들어가지 못한 채로 해가 뜨는 걸 보고야 말았다. 대학 때 이후로 몇 년 만인가 싶었다. 원래라면 현타 온다며 다신 술 안 마신다고 염불을 외울 텐데, 코로나 때문에 봉인되어 있던 고삐가 풀렸는지 모든 것이 웃음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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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장이나 하자며 24시간 순댓국집에 들어갔다. 해장을 하기로 해놓고 또 소주를 시켰다. 그는 이제야 술을 들이부으며 마셨다. 그의 몸이 빨개지더니 취해서인지 졸려서인지 점점 발음이 뭉개졌다.


지금이 딱 남자가 ‘잠만 자고 가자’고 말할 타이밍이다. 나는 겁이 났다.


내가 생각하는 남녀불변의 진리가 있다. 남녀 사이는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첫날밤에 자면 가벼운 관계가 된다. 첫날밤에 안 자야 진지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이건 남녀 불변의 법칙이다.


나는 인생네컷으로 찍은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이 떠올렸다. 이 남자와 고작 하룻밤 보낸 가벼운 관계로 남기에는 아쉬웠다. 결연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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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게 한 말인데 그가 빵 터지며 웃었다. 그에게는 농담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꺼내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오늘 나랑 하룻밤만 보내고 싶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다시는 안 만나려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나 혼자 이렇게 진지한 거지? 괜히 민망해져서 소주를 따르자 그가 소주병을 뺏어 들며 말했다.


“첫날부터 섹스하면 재미없지. 그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곧바로 마시던 소주병에 뚜껑을 덮더니 집에 가자고 말했다.


“더 재밌으려면 이럴 때 끊어야지. 감질나게.”


그리곤 택시를 잡더니 나를 먼저 태웠다. 갑자기 이렇게 보낸다고? 나는 오늘 섹스를 하지 말자고 한 거지 바로 헤어지자는 건 아니었다. 그가 너무 쿨하게 제안을 받아들이니 괜히 내가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한테 그렇게까지 꽂힌 건 아닌가? 이제 그냥 나랑 안 만나려는 건가? 왠지 그가 나를 다시 안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집에 잘 들어왔다는 카톡을 보내두곤 바로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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