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 여섯 번째 남자 요리사, 29세
::사이먼 도미닉 - Lonely Night::
1
코로나 거리두기로 식당, 카페 같은 모든 가게의 영업 시간이 제한될 때가 있었다. 언제는 밤 10시까지였다가 언제는 또 밤 12시까지였다가 단계에 따라 영업 제한 시간이 계속 바뀌었다. 그럼 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했다가… 결국 밖에서 노는 건 포기한 지 오래였다.
“오늘부터 가게들 밤 12시 넘어서도 계속 영업한다는데?”
또 영업 제한 시간이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에는 밤 10시까지도, 밤 12시까지도 아니라 영업 제한 시간이 아예 없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뉴스를 믿지 못하다가 그래도 코로나 걸릴 것 같다며 밖에 나가지 않는 분위기였다. 차츰 한두 명씩 스토리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나도 눈치를 살피다 결국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러 홍대로 갔다. 교통도 좋고, 술집도 많아서 번개로 만날 땐 홍대가 딱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역시나 홍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축제인냥 다들 이미 취해서 좀비처럼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코로나 말고도 그 어떤 바이러스도 전부 다 감염될 것 같았다. 평소였으면 사람 많아서 기 빨린다며 집에 가고 싶었을 텐데, 나도 그 좀비 중 하나처럼 정신을 놓고 웃으며 걸었다.
2
술집은 어딜 가나 만석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그나마 줄이 가장 적은 곳으로 아무 데나 들어갔다. 홍대 놀이터 근처 파란색 조명이 켜진 대형 포차였다. 딱 스무 살 때나 갔을 법한 헌팅술집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이미 사회생활을 하며 입이 고급으로 변해서 이런 술집에서 맛있는 안주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아무거나 시키자고 하면서 누가 화채를 주문하려고 하면 꼭 화채 반대파가 나타난다.
스무 살 때였으면 실랑이했을 텐데 스물다섯 살은 다르다. 이제 사회생활 하면서 돈 버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기로 했다. ‘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데.‘라면서 과일화채, 오돌뼈볶음, 계란말이까지 야무지게 주문했다. 그리곤 한 친구가 새로운 술이 나왔다면서 아이셔에이슬까지 시켰다. 우리 때는 순하리였는데 요새는 별걸 다 판다며 맛을 봤다. 과일소주를 마시니까 정말 대학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코로나라고 집에 봉인되어 있다가 이렇게 나와서 그런지 왜 이렇게 들떴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술집에 나오는 노래마다 신나서 따라 불렀다. 우리뿐만 아니라 술집에 있는 사람들 전부 똑같았다. 에스파의 넥스트레벨, 방탄소년단의 버터, 이무진의 신호등… 테이블마다 투명 칸막이가 있는지도 모르게 우리 모두 그동안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고 자유를 만끽했다.
3
술도 취했겠다 기분도 좋겠다 보이는 사람마다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즐거웠다. 여자고 남자고 상관없이 몇 살이냐 어디에서 왔냐 직업이 뭐냐 호구조사를 했다. 그런데 몇 살이냐고 물을 때마다 전부 나보다 어렸다. 홍대라서 그런가? 스물다섯 살이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어떤 남자는 나에게 ‘누님’이라고 불렀다. 누나가 아니라 누님 소리는 그때 처음 들어봤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나이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언니’라고 불렀다.
‘내가 벌써 늙었나… 이제 홍대 오면 안 되겠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니 정말 전부 다 어려 보이긴 했다. 어두운 골목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 둘을 발견했다. 그 남자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나는 그 남자들을 보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 출입문도 아니고, 활짝 열어둔 폴딩도어를 넘어 냅다 뛰쳐나갔다. 막상 그들 앞에 서고 나서야 내가 취했다는 걸 인지했다.
“담배 필요해요?”
다행히 그 남자들 중 한 명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은 퇴근하고 술 한잔 하려고 보니 술집에 자리가 없어서 배회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우리 테이블에 끼워줄 테니 같이 합석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앉을 자리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며 날 따라왔다.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4살이나 많았다.
내가 아이셔에이슬을 따르려고 하자 그들은 옛날에 순하리도 안 먹었다며 참이슬을 시켰다. 나이 많은 거 티 내지 말라고 장난을 쳐도 그냥 웃었다.
친구들은 먼저 집에 간 지 오래다.
난 혼자 남아 술을 더 마셨다.
나이 말곤 아는 게 없는 남자 둘과 함께 말이다.
4
두 남자는 요리사였다. 3년 동안 같은 식당에서 일한 사이였다. 아무리 일하면서 매일 본다지만 더 끈끈해 보였다. 그들은 나랑 처음 술을 마실 때 서로 눈치도 안 보고 한 몸처럼 움직였다.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뭔가 통하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처럼 왠지 모르게 막역한 느낌이었다.
두 남자는 성격, 말투, 행동도 모두 비슷했다. 남자 둘이 아니라 한 사람과 있는 듯 똑같았다.
두 남자의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외모.
D는 키가 더 컸고, J는 더 잘생겼다. D도 나쁘지 않았지만 J는 딱 여자들한테 인기 많을 상이었다. 좋게 말하면 배우 이민기를 닮았다.
둘 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둘 다 별로였다는 것도 아니다.
사실 둘 중에 누가 더 낫거나 별로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더 이상했다. ‘남자’가 아니라 ‘친한 오빠’처럼 그냥 재밌게 노는 분위기였다. 그들도 나를 여자가 아니라 친한 동생처럼 대한다고 느꼈다.
D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우리 중에 누가 더 마음에 들어?”
J가 화장실에 간 사이 D와 둘이 남았을 때, D가 대뜸 물어봤다. 내가 ‘둘 다 그냥 그렇다.’라고 답하자 D는 다행이라고 말하더니 화장실로 갔다.
불편하다.
너무 불편해졌다.
5
화장실에 갔던 J가 자리로 돌아오고 이제는 J와 둘이 되었다. 그리곤 J도 또 똑같이 D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쟤 마음에 들어?”
나는 곧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둘이서 짰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 똑같은 질문을 하지? 남자들은 그냥 아까처럼 재밌게 놀면 안 됐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D가 딱 너 같은 스타일 좋아하는데 아쉽네. 그럼 난 어때?”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J가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입에서 ‘별로.’ 라는 말이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그리곤 J가 덧붙여 말했다.
“난 너 좋은데.”
설렜다. 갑자기 J가 더 잘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 많이 만나본 듯한 남자의 뻔한 멘트인 걸 알면서도 속고 싶었다. 이래서 잘생긴 남자들은 위험하다.
그때부터 왜인지 J는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더 이상 술도 마시지 않았다. 반면에 D는 혼자 술을 따라가면서 벌컥벌컥 신나게 달렸다. 결국 D는 먼저 잠 들었고, J가 슬쩍 내 옆에 붙어 앉았다.
이럴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나도 노선을 정해야 할 때 같았다.
J.
친한 요리사 오빠들 알게 돼서 좋았는데 이제 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