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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아도 잘 수 있다고?

네 번째 남자 쓰레기, 27세

by 무아예요

::기리보이 - 우리서로사랑하지는말자::


1

스물한 살이 될 무렵 아는 오빠가 말했다.


“요즘 애들은 방학 때마다 여행 잘만 다니더라. 다들 돈 많나 봐. 전여친도 오늘 오사카 갔어.”


그 오빠는 방학 동안 쿠팡에서 일만 했다. 내가 ‘돈 많이 벌었으니까 그 돈으로 여행 가면 되지.‘라고

말했더니 그는 모아둔 돈을 이미 다 썼다며 한숨을 쉬었다.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가 집안 사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가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돈 다 썼어.”


그러고 보니 그의 코가 달라져 있었다.


요즘 술을 안 마셨던 이유가 성형 때문이었다니. 그럼 그렇지... 집안 사정이 있었으면 그렇게 맨날 술 마시고 클럽에 가지 않았겠지.


그 오빠의 별명은 ‘쓰레기’였다. 그가 나한테 쓰레기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학교를 다니던 여자들은 전부 그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자고, 잤으면서 사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자기도 왜 쓰레기가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말했다.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사귀지. 그런데 자고만 싶은 걸 어떡해!”


그는 그날 아침까지 함께 있던 여자에 대해 한참 고민했다. 당연히 사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그 여자가 ‘우리 무슨 사이냐’라고 묻는데 ’어떻게 답해야 계속 사귀지 않고 잠만 잘 수 있을까‘ 였다.


그러더니 밤에 만나기로 한 다른 여자와의 약속을 까먹을 뻔했다며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내가 스케줄 정리는 똑바로 하라고 말하니까 그냥 웃으며 갔다.


그가 쓰레기인 건 분명하다.


2

그 오빠가 쓰레기라고 해서 연애 불구인 건 아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여자친구가 생긴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들과 모든 것을 단절했다.


그러다 쓰레기 오빠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올 때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걸 알아챈다. 왜 헤어졌냐고 물어보면 그 이유는 항상 같다.


“글쎄. 더 이상 사귀고 싶은 마음이 안 드니까?”


나는 도대체 언제 여자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냐고 물어봤다. 자기도 모르겠다고 답할 줄 알았는데, 꽤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자고 싶기도 하면서 안 자고 싶은 사람이 가끔 있어. 그런 사람이랑 사귀는 거지. 여자랑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멀리 여행 가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그걸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사람이랑 어떻게 사귀냐?”


쓰레기 오빠가 정의한 연애는 간단했다.


‘지속적으로 섹스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것.’


그는 어떤 여자든 섹스를 할 수 있지만, 데이트도 하고 싶던 여자는 살면서 몇 없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 전혀 공감은 안 되는 말이었다.


누구랑이든 할 수 있다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하지?


나는 그에게 ‘그럼 나랑도 잘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할까?“


쓰레기. 그는 역시 쓰레기가 맞다. 그리고는 세상에 쓰레기가 많다며 나에게 조언했다.


“사귀기 전에 잔다고 다 쓰레기는 아니거든? 근데 쓰레기들은 다 사귀기 전에 자. 쓰레기 만나기 싫어? 그럼 사귀기 전에 안 자면 돼."


스물한 살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그땐 그 오빠가 쓰레기라서 그냥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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