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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거 사주는 남자 좋은 남자

여섯 번째 남자(1) 요리사, 29세

by 무아예요

::센치한 하하 -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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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와 연락을 하며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자니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요리사와 방송작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가 큰 직업을 가졌다.


흔히 3D라고 불리는 박봉에 노동 시간은 긴 직업.

누구는 ‘하고 싶은 일 해서 좋겠다’고 말하고, 누구는 ‘그 돈 받고 왜 그렇게까지 일하냐’고 말하는 이상한 직업.

돈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고, 꿈을 이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직업.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좋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와 대화도 잘 통하고, 나를 잘 이해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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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체 먹는 걸 좋아해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마셰코>, <냉부해>부터 올리브 채널을 보며 음식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모습들까지 즐겨봤다.


코로나 때는 음식점들이 영업을 얼마 못하다 보니 유튜브를 시작하는 셰프들이 많았다. 그중 나는 정창욱 셰프의 채널을 가장 좋아했다. 미디어를 통해 비춰진 정창욱 셰프는 주방에서 일을 한다기보다 노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긴장하고 각 잡으면서 ‘플레이팅은 이래야 해.’, ‘이건 꼭 이렇게 볶아야 해.’라며 요리하는 셰프들과 달랐다.


나는 정창욱 셰프의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선망하기 시작했다. D는 딱 그런 사람이었다.


D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사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대학도 가지 않았다. 스무 살 성인이 되자마자 요리를 시작해서 지금은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동갑이거나 나이가 더 많은 후배가 더 많았는데, 스텝밀을 차려줄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늘 어떤 메뉴를 만들까 고민하고 매번 다른 음식을 만드는 재미로 출근한단다. 핫한 맛집에서 먹었던 요리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었다. 그리곤 나에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D는 꽤 어른스럽고,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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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중식 요리사였다. 대학도 군대도 안 간 스무 살짜리가 당장 시작할 수 있던 게 중식이었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요리사라고 하면 양식이나 일식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원래는 양식이나 일식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식을 하다 보니 중식이 가장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6일을 일했고, 하루 쉬는 날마다 중식당을 찾아갔다. 기본 짜장면과 짬뽕 맛집부터 중식풍의 퓨전 요리를 파는 와인바까지 다녔다.


D는 꽤 주관이 있고, 성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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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의 매일 밤늦게 퇴근하고 우리 동네로 왔다. 우리는 함께 맛집에서 야식을 먹거나 새로운 와인 혹은 전통주를 마셨다. 그가 쉬는 날이면 맛있는 디저트나 커피를 파는 곳도 두세 군데씩 다녔다. 와인 샵에 가서 30분 넘게 술 구경을 하고, 향신료나 소스를 잔뜩 파는 마트에 가기도 했다.


요리사와 맛집을 다닌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어떤 재료가 들어갔을지 어떻게 요리했을지 유추했다. 의견이 갈릴 땐 내기를 하기로 하고 직원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는 사소한 디테일이나 처음 들어보는 향신료까지 맞췄다.


계산은 항상 그가 다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전부 해버렸다. 내가 계산을 먼저 하려고 하거나 미안해 하면 ‘어차피 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혼자서 먹는 것보다 둘이 여러 개 맛보는 게 낫다며 오히려 날 설득시켰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내가 J랑 있었던 일을 몰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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