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남자(2) 요리사, 29세
::SS501 - 내 머리가 나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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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먼저 J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J와 있었던 일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친구랑 하룻밤 보낼 뻔한 여자인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한 마디 더 붙였다.
“내가 널 좋아하면 된 거야. 너무 바빠서 다른 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좋다고 말하지?
어떻게 이렇게 맹목적으로 잘해주지?
그러고 보니 그는 나에게 사귀자거나 하룻밤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말도 한 적 없다. 나는 그가 나에게 사귀자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갑자기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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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그가 비싼 음식을 계산할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돈을 쓰는 건 또 아까웠다. 음식 이야기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이제 뭐가 맛있는 지 뭘 먹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그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 맞다.
하지만 난 그만큼 좋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상처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요즘 바빠?]
[왜 답장이 없어!]
그러다 보니 6시간 뒤, 12시간 뒤, 그 다음 날… 그에게 카톡이 오면 답장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언제 만날래~]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몇 년째 답장을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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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명 좋은 남자였다.
좋은 남자인 걸 알면서 왜 좋은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걸까?
나는 왜 나쁜 남자에게만 끌릴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냥 내가 그를 안 좋아했던 것 뿐이다. 그가 좋은 남자라고 느낀 건 내가 안 좋아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했다면 그도 분명 나쁜 남자였을 것이다. 내가 나쁜 남자에게만 끌리는 게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나쁜 남자처럼 느끼는 것이다.
좋아하면 다 나쁜 남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