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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처 선물 그린라이트인가요?

아홉 번째 남자(2) 트로트 가수, 32세

by 무아예요 Feb 20. 2025

::제이래빗 - 요즘 너 말야::


연예인도 사람이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한 번씩 그 사실이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촬영이 힘들다고 말할 때, 사적인 일로 힘든 내색을 보일 때, 비속어를 쓸 때… 카메라나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편한 모습이 보이면 연예인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촬영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연예인 모드로 돌변한다. 사람인데 어떻게 한결같을 수 있겠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과 늘 똑같이 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남자는 좀 달랐다. 


그는 늘 연예인 같았다. 그냥 연예인이 체질 같았다. 단 한 번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힘들다, 무섭다, 두렵다, 화난다, 짜증 난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았다. 평생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처럼 언제나 웃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가 싫었다. 


그는 인간적인 면이 하나도 없었다. 항상 연기를 하면서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가식적인 사람. 속내가 아예 없는 사람. 자기 자신이 없는 사람. 그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숨이 턱턱 막히고 불편했다. 


나 말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언제나 열정적이고, 말도 재치 있게 해서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에서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유튜버인 줄 안다. 

나도 그의 직업이 가수란 걸 종종 까먹을 정도니까. 


그의 본업은 가수다. 댄스, 발라드, 힙합, 트로트, 락, 뮤지컬… 장르 불문 뭐든 부른다. 데뷔한 지는 꽤 됐는데 유명한 대표곡도 없고,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것도 모르겠고... 그도 그렇게까지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가 무대에 설 때 모습은 좀 나아 보였다. 밝고, 에너지 넘치고, 잘 웃으니까 공연도 많이 다녔다. 본인 노래보다 남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긴 했지만… 


그는 무대에서도 항상 웃었다. 

심지어 슬픈 노래를 부를 때도 웃었다. 


그래서 난 그가 슬픈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싫었다. 


분명히 슬플 때도 있었을 텐데 왜 웃고 있을까? 

저렇게까지 애써서 뭘 숨기고 있는 걸까? 


며칠 내내 퇴근할 때마다 그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며 왜 슬플 때도 웃을까 고민했다.


그 사람은 연예인인데, 

사람 같은 면이라고 하나도 없는 천생 연예인인데,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팬심 정도인데, 

절대 이성적으로 보는 건 아닌데, 

일할 때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그가 좋았던 것 같다. 


그와 함께하던 프로그램이 종영한 뒤에도 그는 종종 연락을 해왔다. 


서로 하고 있는 방송, 화제 되고 있는 방송, 앞으로 하고 싶은 방송에 대한 이야기. 항상 일 이야기만을 나눴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서 호칭은 ‘작가님’, ‘OO님’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동료라고 하기에는 사적인 관계에 가깝고, 친구라고는 하기에는 비즈니스 관계에 가까운 사이. 일하다 보면 그렇게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관계가 너무 많이 생겨서 그와 어떤 사이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 그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엔 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뜬금없이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내왔다. 

아무 메시지도 없이 선물 하나만. 


확인해 보니 드림캐처였다. 


일하는 사이에 고마움의 표시로 커피나 영양제 같은 건 보내지만, 드림캐처는 남자친구한테도 받아본 적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아니고, 당일도 아니고, 그것도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웬 드림캐처?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잘못 보낸 거 아니냐고 답장을 보내자, 내 메시지 옆에 ‘숫자 1’이 바로 사라졌다. 선물을 먼저 보내고 이어서 메시지를 적고 있는 줄 알고 기다렸다. 


몇 분 기다려도 아무 메시지가 오지 않길래 뭔가를 엄청나게 길게 쓰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카톡이 왔다. 


[멜크~^^] 


장난 똥 때리나. 사실 메시지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나한테 관심 있나?’ 착각했다. ‘드림캐처 선물 의미’, ‘남자가 크리스마스 선물하는 이유’ 같은 것도 검색해 봤다. 


하지만 멜크~^^. 딱 그 말뿐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다 그럴 것 같다는 느낌. 

이성적인 감정을 섞어 사람 헷갈리게 하면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 

함부로 설레면 나만 힘들어질 것 같다는 느낌. 


그런 느낌들이 혼란스럽던 내 마음을 멈춰 세웠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오옹 땡큐 ㅎㅎ] 


주변에 나보다 예쁜 여자들 많을 텐데, 연예인이 나한테 나쁘게 보여서 좋을 거 없겠지, 5만 원짜리 드림캐처면 저 사람한텐 비싼 돈도 아니겠지...


나는 그를 좋아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서자니 내 자신이 작아졌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마음도, 

그 두려운 마음까지도 모두 숨겼다.


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림캐처 사건’ 이후로도 이전과 똑같이 대했다. 


나도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친한 동료’ 혹은 ‘친한 친구’로 관계를 유지했다. 


몇 개월 뒤, 그의 공연에 초대를 받아서 무대를 보러 가게 됐다. 역시 오랜만에 다시 봐도 그가 노래를 

눈물 나게 잘 부른다거나 멋있고 잘생겼다는 건 모르겠다. 몇 명 없긴 했지만, 그에게도 팬이 있긴 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무대 중간중간 그가 하는 말들이 좀 재밌고 웃기긴 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 그와 따로 만났다. 말로는 ‘고생했다’, ‘멋있다’, ‘잘 봤다’ 하고, 그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무대 화장을 두껍게 하고 웃고 있는 그 얼굴이 그날따라 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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