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이어도 괜찮아
자작詩.
내가 문을 열자 세상은 지독한
흑심으로 벅벅 칠해 있었다
어둠을 어둠으로 가리며 태어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다섯 손가락을 오롯이 뻗어 하염없이
눈앞을 문지르며 걸어갈 뿐 이었다
문득 나하나 사라진다고
뭣하나 마주할 일 없을 생각이 드니
질투가 났다
나는 별자리 하나 그릴 수 없는
조그맣고 유악한, 그림자의 그림자
변화하는 모든 것을 조목조목 기대하다
끝을 생각해 본 몇 달이었다
냉정에 빠져 차가워진 웅덩이에
기필코 내 머리를 담갔다
다시 눈을 뜬 날엔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나의 그림자를 내가 걸었다 그 기억 속에 내가 있었다
초록색으로 덮인 나의 코드를 비스듬히 읽는다
그저 이 체계에 적힌 채 어딘가를 떠돌면 그만이다
이제 모든 걸 받아들일 거야
그래도 막연히 온순한 아이는 아니다
떠돌다가도 그냥 걸어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