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드라마 “굿 파트너”에서 남편의 외도가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장면을 보며 한 멋진 대사를 발견했다.
“확실한 건 다 지나간다.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꼭 지켜내라.”라는 말이 나의 심장을 관통하는 비수를 꽂았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때로는 상대방에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자주 건넸다.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 이 순간만 참아보자.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다시 생각해 보자.” 나를 달래는 오랜 버팀목이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 이쁜 자식들이었다. 태어나서 엄마가 되었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나에게 현재를 살아갈 힘을 주었다. 남편 때문에 힘들 때면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도 남편만큼 아이들을 사랑해 줄 아빠는 없어. 내가 다시 누굴 만나더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남편처럼 헌신 해줄 사람은 없을 거야. 나만 참으면 돼. 남편은 아이들에게만은 진심이잖아?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 하잖아. 그거면 된 거야.”
이런 생각을 뇌에 세기면서 나는 수도 없이 이혼을 미루어 왔다. 이제는 이혼할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밖에 모르는 남편을 위해 어떤 것도 더 해주고 싶지도 않다.
방학 동안 나와 입원했던 아들딸이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딸은 냉장고부터 씽크대까지, 아빠가 어지럽게 벌려놓은 것들을 정리했다. 냄새나는 행주부터 삶고, 냉장고에 상한 음식을 버리고 살림들을 제자리에 놓았다.
집을 3주나 비우면서 이 더운 여름에 쌀을 벼란다에 놓고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란 나는
“벌레가 생겼겠네? 당신은 그걸 그냥 놔두면 어째?”라고 말하자,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나 집에서 밥 한 적 없는데?”라며 더 황당하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병원에 왔고, 집에 아무도 없으면 상하는 음식이 밖에 있나 봐야지. 쌀은 벌레 생겼겠네? 아들딸! 집에 가서 쌀 좀 살펴봐. 기어다니는 애벌레 같은 거 생겼으면 버려. 다행히 아무렇지 않으면 냉장고에 넣고.”
“쌀은 3분의 1통 정도 남았는데,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있어. 어떻게 해?”라며 벼란다의 쌀을 본 딸이 전화했다.
“다 씻어서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고 밥해서 먹어. 우리 딸 벌레 때문에 씻을 수 있어? 힘들면 아들한테 부탁해.”
엄마의 부재로 더운 여름, 어린 나이에 살림에 신경 쓰던 딸은 나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위로 받기를 원했다. 나는 감사하고 고맙고 귀한 내 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은 에어컨에 물이 찼다며 혼자 수리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다. 혼자 집안일에 애쓰는 딸이 안쓰러웠다.
“이쁜 딸! 아빠나 아들 오면 시켜! 우리 딸 너무 힘드네.”라며 위로와 격려를 하자,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 어쩔 수 없지.”라며 긍정적인 대답에 감사했다.
매일 집안일에 지쳐가던 딸이 엄마를 위해 쿠키를 구워 병원으로 찾아왔다. 함께 네일을 했던 딸의 손톱은 지저분하게 벗겨져 있었다. 딸은 손을 내밀려 말했다.
“엄마! 내 손 좀 봐! 네일한 손톱이 다 망가졌어. 나 집에 가기 싫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미안함에 목이 메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딸이 모두 하고 있었다. 한참 멋 부리고 응석부리며 즐겨야 하는 나이에, 동생 식사까지 챙기며 우리집 살림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살았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지키고자 했던 자식들은 정말로 잘 지키고 있는 것일까? 공주처럼 왕자처럼 키워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우리집 공주 왕자 둘이 집안일을 전부 떠맡고 있다. 아픈 엄마와 트럭 일을 시작한 뒤 자신만 생각하는 아빠의 부재를 메우는 남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이었을까? 사랑에 굶주린 나는 그 사람을 남편에게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제는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마음껏 주려고 노력하지만, 병원에 있는 나날들이 늘 미안하다.
매일 아침 통증 속에서 눈을 뜨지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 오늘 아침도 아무 일 없이 눈을 떠서 감사합니다. 지금 느끼는 통증을 저녁쯤에는 좀 덜해지길 바랍니다. 생리 끝에 오는 통증이 이번에도 다리로 심하게 오는 듯해요. 더 이상의 아픔이 걸음걸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부탁드려요. 분명 저는 하나님의 기적 속으로 다 나을 거라고 믿어요. 하나님은 항상 저에게 사랑과 힘을 주셨잖아요. 딸이 말하는 “럭키 비키”가 “럭키 인경”으로 바뀌도록 현명하고 지혜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부모로서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때로는 희생과 인내를 동반한다. 나는 그 사랑을 최선을 다해 주고 있다고 믿지만, 가끔은 그 무게에 짓눌린다.
그래도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