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거나 일이 꼬일 때, 우리는 무당이나 사주팔자를 보러 다닌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로를 받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말이 우리의 삶에 절망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큰 힘과 용기를 준다. 나 역시 삶이 고단할 때, 종종 사주에 기대곤 했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저녁에 커피를 마셔서인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쁜 가을 햇살을 고스란히 내리쬐는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차장 마당으로 나섰다.
치료가 없는 일요일의 요양병원은 한산했다. 외출한 환자들이 많아 정적이 깔려 있었다. 약간씩 절고 있는 내 걸음걸이를 보며, 조금이라도 티 내지 않게 걷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20대의 처음 직장인 ‘쌍용’이라는 회사에서 만난 언니였다. 오랜만에 내 안부를 묻는 그녀는 나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진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언니는 우리가 말하는 사주나 무속인의 말을 잘 믿는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우리의 목소리는 더 기운차진다. 몇 달 전, 내가 “빠르면 2달이래! 언니야!”라고 말한 뒤, 자주 나의 안부를 물어본다. 오늘은 전화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난 왜 너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죽을 거 같지 않지? 혹시 요즘 점 같은 거 본 적 있니?”
“하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금방 죽을 거 같진 않아요. 그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요즈음 본적 없는데, 예전엔 자주 봤었죠. 사주가 바뀌겠어요?”
“뭐라고들 하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도 내년부터 나에게 모든 복이 들어와 60세에 가장 좋고 65에 이름을 날린다는데. 웃기죠? 암이 그때까지 없어지기라도 했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에 언니는,
“65세에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뜨는 거 아니니?”라는 엉뚱한 말에 나는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언니! 그때까지나 살았으면 좋겠네요. 근데 신기한 건 있었어요. 제가 두 번째 암이 왔을 때, 절을 오래 다닌 보살님이 제 손금을 보셨어요. 그때 갑자기 제게,
‘너 올해 초에 돈 좀 날렸니? 많이 날렸으면 아무 일 없이 수술 잘하고 나올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시는 거예요. 그때 수술이 4번 중에 가장 편하게 하고 왔거든요. 게다가 그해에 사기 친 2명의 여자가 작년 내가 ‘뼈 전이’된 걸 몰랐을 때, 이유 없이 죽었다는 부고가 날라 온 거예요.
돈 받아주던 사채업자도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문데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올해 5월에 딸과 길을 걷는데 갑자기 그들이 생각나면서 나 대신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소름이 짝 끼치더라고요.”라고 말해도 언니는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어. 난 그런 거 믿거든. 주위에서 그런 것도 봤고. 정말 그런 거 같다. 너를 보면 신기했어. 그 힘들고 어려운 걸 다 견디고.”
나를 이해해 주는 언니 말에 신이 나서,
“저도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 같아요. 그 무서운 통증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올해만 잘 넘기면 정말 점쟁이들이 말한 55세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가능할까?’ 싶어요.
작은엄마가 절에 가셔서 스님께 제 이야길 하니깐, 지금 있는 병원이 나와 잘 맞고, 거기서 치료하면 다 나을 수 있다며 오래 있으라고 했다네요. 웃기지요? 저도 이 병원이 좋긴 해요. 치료도 좋지만 우선 잠을 잘 자요. 주말에 딸이 와도 편하게 있다 가고요.”
“그 말이 맞을 거 같아. 내가 너랑 통화하면 목소리도 갈수록 좋아지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아. 잘 치료해서 완치될 거야.”
언니의 격려를 받으며, 나는 문득 작년에 죽은 두 여인이 떠올랐다. ‘정말 그들이 나의 목숨을 가지고 간 걸까?’ 8년 전, 그들은 나에게 큰돈을 사기 쳐 몇 년간 나를 미치게 했다. 그들도 미웠지만, 사기당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나를 더 학대하고 괴롭혔었다.
사기인 줄 알면서도 돈을 입금하고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나중엔 포기하고 사채업자에게 받아달라고 넘겼다. 돈은 아주 일부를 받긴 했지만, ‘너무 적어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받을 수 있을까?’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작년에 2명의 여성이 몇 달 상관으로 부고장이 메시지로 온 거다. 정말 그들이 나의 목숨을 가지고 간 거라면, 큰돈이지만,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들 덕분에 2번째 암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이번엔 죽음을 면하게 해주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그들의 목숨과 나의 생명을 바꿔서라도 살고 싶다. 이제 내 생활이 편해지고 안정되어 가는데, 암이라는 병으로 무서운 통증을 겪으며 죽고 싶진 않다.
변화하는 내 몸을 보면서 기적이 뭔가를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매일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비록 며칠 전 Bone Skin 결과에서, 작년과 비교했을 때, 암이 많이 커졌다는 소식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래도 통증이 줄어 슬프진 않다.
이제는 내가 좋다며 나에게 찾아온 암을 미워하기보다는 나와 함께 잘 살자고 달래고 있다. 통증 없이 더 이상 커지지 말고 행복하게 나와 공존하자며 매일 나는 조심스레 쓰다듬고 사랑을 전해주고 있다. 암이 나의 사랑을 느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고통 없이 오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