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삶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올해 초만 해도 나는 걸어 다니고 무언가를 손에 들고 움직이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상엔 당연한 건 없었다.
모든 일상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었던 나는 4월의 어느날, 골수암 의심 진단을 갑작스럽게 통보받았다. 이 충격적인 진단은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다.
작년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왼쪽 다리와 오른쪽 팔의 통증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라, 10년간 나를 괴롭혔던 “유방암”이 죽음을 불러오는 “뼈 전이”로 변형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6월의 참을 수 없는 어깨와 다리 통증은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손짓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나는 오직 하나의 소망만 간절히 빌었다. 통증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매일 아침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지금까지 당연히 누려왔던 일상생활이 무엇보다 귀한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6월부터 시작된 나의 치료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8월 9월 생리가 잠시 멈춰주면서 나의 많은 치료들은 통증을 하루가 다르게 줄여주었다. 그러나 9월 말에 예상치 못한 통증은 6월의 통증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본병원에서도 지금 입원한 병원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조차 나를 마지막 환자처럼 대하며 끝을 준비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현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생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10년 전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자궁적출 수술을 했어야만 했다.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본병원 교수님은
“정말 치료를 안 하실 겁니까? 좋은 약이 많습니다. 먹는 약도 있고.”라는 말씀에
“저에게 맞는 먹는 항암제가 있어요? 그러면 해보고 싶어요.”
“주사와 먹는 항암제의 차이가 뭔가요?”라며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보시며 질문하셨다.
“먹는 항암은 제 상태를 맞게 조절하며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씀드리자,
웃으시면서 피검사부터 하라고 하셨다. 생리하고 있으면 약이 달라지기 때문에 호르몬 검사가 필요했다. 나는 피를 뽑으면서 생리가 곧 멈춘다는 결과를 듣고 싶었다.
일주일 후, 피검사 결과는 나를 다시 절망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호르몬이 정상이어서 생리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며 항암치료를 위해선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나는 그 주사를 맞으면 생리가 멈출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맞는다고 했다.
4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말씀에 나는 예전 산부인과에서 말하는 생리 멈추는 주사라고만 생각했다. 주사를 맞으러 나오자, 항암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시간을 정하자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같이 온 분이 기다리기에 다음에 한다고 말하고, 약 이름을 적어 왔다.
요양병원으로 돌아온 나는 내가 맞아야 하는 호르몬 주사 “졸라덱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본 나는 부작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단순히 생리를 멈추게 하는 호르몬제가 아니었다.
“졸라덱스”는 유방암과 자궁내막을 치료하는 항암제지만, 홍조, 발한, 자궁근종 변성, 약물 과민증, 아나필락시스 반응 등 내가 마주한 부작용의 목록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생리 억제제가 아니었다.
암 치료 과정에서 사용하는 독한 약물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일까?’ 감기 항생제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나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본 병원에 전화해 항암을 미루겠다고 했다. 그러자, “졸라덱스”를 맞지 않으면 다른 항암제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다시 반납하라는 연락이 왔다. 약국은 한번 나간 약은 반납이 어렵다고 했지만, 병원에서 처방 취소를 했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취소해 주었다.
나는 약국에 가서 죄송하다며 여러 번 사과하고 “빼빼로” 한 통을 주고 왔다. 마음이 편해졌다. 9월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암에 가장 중요한 건 기력을 항상 유지하는 거였다. 9월의 고통을 넘기고 난 뒤, 지금까지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옆에서 간병한 딸 또한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때 이후로 기력이 올라오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 엄마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호한 딸은 지금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9월의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본 의사와 간호사들은 항암 환자들이 평상시엔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다가 급작스러운 통증이 오면, 견딜 힘이 없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내가 살아있는 걸 기적처럼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항암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지금은 내가 먹는 물과 비타민 B17(아미그달린) 덕분에 몸이 많이 회복되어 예전처럼 여러 치료를 병행하며 암을 관리하고 있다.
나는 항상 기도한다. 내 암이 모두 없어지길 바라진 않는다. 지금처럼 견딜 수 있는 간헐적 통증을 동반하더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살고 싶다. 우리 나이가 되면 건강한 사람들도 팔다리 한군데씩은 아프다. 이 정도 아픔은 참고 살 수 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여 남들보다 적게 살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게 남은 삶의 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 항암으로 구토와 메스꺼움으로 음식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살찌는 걸 고민하며 일반인처럼 살고 싶다.
또한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과 웃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암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욕심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통증을 수용하며 현명하게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 믿음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 분명 지금 나를 병원에서 생활하게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거다. 내가 그 깨우침을 알게 될 때, 나를 다시 병원 밖으로 내보내 주실 거로 믿는다.
오늘도 나는 큰 통증 없이 항암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한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 길의 끝을 볼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살아간다.
“삶은 축복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