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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Nov 16. 2024

침묵 속에서 흐르는 눈물 : 딸이 주는 위로와 희망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면 언젠간 죽는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죽는다. 이처럼 간단한 원리를 알면서도 하루하루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낄 때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물론 부정이 머릿속에 공존한다.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진 않는다.    

  



4주 전 무서운 통증으로 고통받으며 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나의 면역력은 바닥을 쳤고. 무서운 아픔은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통증은 마지막 힘까지 짜내야만 이겨낼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새로 교환 해준 비싼 물 덕에 강한 통증이 겨우 가라앉자, 나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복기를 맞이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무서운 생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3주 만에 다시 찾아왔다.     


2달간 멈춘 생리 덕에 몸이 좋아지는 줄 알았다. 1달 전만 해도 이 모든 고통이 곧 사라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희망이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매일 암이 커지는 걸 알리듯 통증으로 내 몸과 마음을 비웃고 있다. 비싼 물도 비타민 B17 주사도 매일 3시간씩 딸의 정성스러운 마사지와 그 외의 부수적 치료들조차도 암은 고통으로 나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다.     




생리로 인한 우울증과 함께 통증은 나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침상에 누워있는 시간은 늘어갔고, 나도 모르게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딸이 어느날,     


“엄마! 왜 그래? 엄마는 나을 수 있어. 뭐가 문제야? 조금씩 좋아지잖아.”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 말에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다독이면서도 속으론 ‘이건 고문이야!’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쁜 딸은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대학 생활을 엄마 때문에 좁은 병실에서 희생하고 있다. 먼 병원까지 통학하며 매일 나를 돌보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럼에도 딸은 내가 웃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써 밝게 행동한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딸은 맛있는 간식들을 사와 위로해 준다. 딸의 노력은 나에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온 마음에 휘감겨 솟구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침상에서조차 자유로이 일어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렇게라도 사는 게 맞는 건지?’ 다시 한번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든다.   

  



최근에 뜻밖의 기쁜 일이 있었다. 몇 달간 싸워 이긴 보험회사 덕에 보험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뜻밖의 목돈을 본 딸은      


“엄마! 평생 돈을 아끼기만 했잖아. 이젠 펑펑 쓰고 살아. 돈 다 쓸 때까지 죽지 마! 우선 병실의 TV부터 바꾸면 어때? 매일 보는데 영화관처럼 큰 걸로 보면 좋을 거 같아.”    

 

“하하하! 딸! 100인치로 살까? 우리 정말 영화관처럼 누려볼까?”라는 나의 말에 딸은 동생에게 줄자를 가져오라며 톡을 날렸다. 엄마보다 현명한 딸은 병실 사이즈부터 확인했다. 75인치가 한계였다.     


조금이라도 싼 TV를 고르는 나를 보며,      


“엄마! 고르지 말고 가장 비싼 걸로 사! 맨 윗줄에 나올 걸로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렇게 좀 살아!”라는 딸의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이쁘나! 엄마는 그렇게 살아오질 못했어. 가난한 집에서 아끼는 것만 배웠어. 엄마가 비싼 옷이나 신발, 명품 백 등 사는 거 봤어? 지금도 알리에서 싼 것만 사잖아!”라고 말하는 나에게 딸은 답답해하며,     


“이젠 그러지 마! 엄마! 가볍고 이쁜 캐시미어 코트와 롱 패딩도 다시 사. 집에 있는 거 다 버리고.”라는 딸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모든 선택과 행동이 희생과 절약의 연속이었다. 이제야 조금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지만, 이미 몸은 너무 약해져 버렸다.     


“그럴까? 하하하. 근데 이젠 늦었어. 돈 있으면 뭐 하니? 움직일 수가 없는걸. 그 옷을 어떻게 살 거며, 어딜 입고 다니겠니?”     


“엄마! 본 병원 갈 때도 입고 가끔 외출할 때 입어. 백화점가자! 휠체어 타고 가면 되지?”     


“백화점을 휠체어 타고 가? 난 그런 사람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리고 휠체어 타면 딸이 힘들어서 어떻게 끌고 다니니? 안돼!”라고 말하는 내 눈은 벌써 눈물이 글썽거렸다. 매일 남모를 눈물을 닦으며 많은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섭고 두렵다. 얼마나 아파하며 망가지는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까? 항상 죽음을 생각할 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이쁘게 죽고 싶었다. ‘언제든 자면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었다.     


이렇게 힘들 때 같이하고 싶어 결혼했는데 남편은 소식도 없다. 더 이상 기다리진 않지만, 죽을 때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되지 않는 내 재산을 남편에겐 십 원도 주고 싶지 않다. 얼마나 힘들게 평생을 다 받쳐 모은 건데. 

     

나를 여기까지 몰고 온 남편이 용서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나를 묶어놓은 남편.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게 억울하다. 이혼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지긋지긋한 남아선호 사상의 부모님에게 벗어나고 싶어 아닌 줄 알면서도 선택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딸을 낳은 거다. 이쁜 딸은 내 유일한 희망이며 위로이다. 그 하나로 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길 내 마음을 다독인다.     


오늘도 나는 통증 없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기도한다. 비록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만끽하는 외출은 불가능하지만, 가을의 화창한 날을 맞이하며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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