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통 속에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2월 17일, 첫 임상 마루타로 태반 백신을 맞았다. 큰 효과를 얻고자 치료에 임한 건 아니었다. 뭐든 조금이라도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못 할 게 없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금씩 좋아지는 나를 보며 나는 벌써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상에 빠졌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날로 심해지는 통증으로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화려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새해가 밝았다는 제야의 종이 울릴 때도, 나의 마음은 한없이 비관적이었다. 핸드폰 속 일기장을 보면 다시는 병원 밖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월 5일 잠이 오지 않았다. 늦은 시간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지금 거신 전화는"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고 있었다. 멋지고 이쁜 젊은이들의 사랑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꿈같은 사랑, 화려한 일상,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들이 나의 평생소원을 대신 이루어 주는 듯했다. 그 속에서 나는 한동안 여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들뜬 마음으로 3시가 넘어 침대에 누웠다. 드라마 속 멋진 여주인공은 어느새 사라지고, 현실 속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똑바로 누워서만 잠을 자야 하는 내 처지가 전부였다.
내 삶이 이렇게까지 초라해질 줄이야? 그래도 원장님 말씀대로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나?’ 점점 차갑게 얼어붙는 내 마음에 눈물만 흘렀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면, 또 다른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억울해! 나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 어릴 땐 가난과 알코올 중독 부모 밑에서, 결혼해선 남편과 시댁의 등살에서, 이제야 내 삶을 찾으려 했는데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다행히 철모르고 들었던 보험과 결혼 후 어린아이들 덕에 외출 대신 홈쇼핑에서 가입한 보험들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경제적으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살자. 남들은 아프면 돈이 제일 큰 문제라던데 나는 보험이 모든 걸 해결해 주잖아! 이게 어디야?’라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고통과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잠을 설치고 일어난 나는 또다시 넷플릭스를 켰다.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강했지만, 한편으론 ‘지금 글을 써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1월 7일, 잠시도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점점 심해지는 다리 통증으로 두세 걸음만 움직이면 화장실인데도 마음대로 가질 못한다. 뭘 해도 낫질 않는다. 이렇게 움직이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대소변 받아내며 죽어가는 걸까?
무섭고 두려운 나날들이 나를 매 순간 공포에 휩쓸었다. ‘뜸을 뜨면 좀 나을까?’라는 생각에 잠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2층 치료실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뜸 뜰 때, 아픈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고 나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싶어 한 번 더 뜸을 떳다.
4시간 동안 꼼짝 못 하고 누워서 뜸을 뜨며 ‘이렇게 살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소리 없는 눈물이 귀 쪽으로 흘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줄지 않는 통증을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어보며 아미그달린도 맞았다.
어떤 치료든 그때는 잠시 좋아지는 듯하지만,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이런 삶이라도 제정신으로 살아 있으니 좋아해야 하는 걸까? 뭐가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고통 속에서 도망가고만 싶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나는 걸까? 잠자다 어느 순간 조용히 죽을 순 없을까? 어떤 약을 먹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의학에 무지인 난 인터넷을 검색해 보지만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
1월 12일, 8일에 시작된 생리가 며칠간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게 고문이고 고통이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옆에 있어 웃을 일이 종종 있었다. 살아 있는 한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건 축복일지도 모른다.
생리가 멈춰가자, 움직이지 못하고 먹기만 해서 그런지 몸무게까지 늘어만 갔다. 스트레스는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주체할 수 없게 먹도록 유도했다.
'아무리 아파도 식탐은 줄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더 한심해 보였다. 1년 전 이때만 해도 자유로이 돌아다녔는데! 어찌 이리되었을까?
또 한편으로는 빠르면 2달이라고 했는데, 6개월 이상 살아있으니 감사해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옆에서 주는 사랑을 받으며 맘껏 웃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순간순간을 버티었다.
이처럼 다시는 좋은 날이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태반 백신을 맞고 조금씩 줄어드는 통증에 새 삶이 올 것 같다. 당장 기적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어제는 병원 로비에 있는 당구대에 서서 잠시 폴대를 잡아봤다. 가슴이 뛰었다. ‘암에서 해방되면 제일 먼저 배워야지!’하고 다짐했던 당구였다.
내가 배우면 아이들도 배울 거다. 가족 외식 후, ‘4가족이 한 게임 하며 많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아이들과 함께 놀거리를 준비했었다. 얼마 전까진 꿈이었지만, 이제는 곧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생겼다.
태반 백신이 특별한 치료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사용하는 다른 약물에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아미그달린, 흉선 추출물, 뜸, 고주파, 찜질, 녹즙, 생과일주스, 홍화씨 등 모든 치료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조금씩 변화시켜 주는 것 같다.
백신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암 치료와 달리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호르몬의 균형을 만들어 주는 장점이 있다. 태반을 맞고 1월 생리 후, 지금까지 생리도 하지 않는다.
생리가 나오면 좋아진 몸이 어떻게 망가질진 알 수 없다. 원장님께서는 “생리를 해도 예전과 달리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암이란 손님이 찾아온 지난 11년간 4번의 수술과 뼈 전이가 된 지금도 나는 나의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수술 이외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항호르몬제를 먹지 않았던 내 선택이 현명했다는 걸 현재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오른쪽 어깨와 사타구니의 가장 위험한 곳에 손바닥만큼 큰 암 덩이가 있다. 절대 없어질 수 없는 크기이다. 본 스캔을 어느 쪽으로 촬영해도 새까맣게 보인다. 한 의사는 재채기만 해도 끊어질 수 있는 위치이며 크기라고 했다.
만약 내가 일반적 치료인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또는 항호르몬제를 복용했다면 어깨나 다리를 여러 번 수술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암 환자라면 이 정도의 뼈 전이를 견딜 수 없기에 본 병원 선생님도 2달이라는 말씀을 서슴지 않고 하신 거다.
태반 백신 맞은 지 4주가 된 오늘, 나는 이젠 죽음을 생각하진 않는다. 얼마가 될 진 몰라도 생명 연장을 위해 조금씩 좋아지는 몸을 느끼며, 오늘 나는 2차 태반 백신을 맞았다.
오늘은 내 피를 3CC 뽑아 태반주사 20CC에 섞었다. 이유는 몸도 암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적응력이 강하고 똑똑하기에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다. 이번 4주간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꿈꾼다. 살아갈 날들을, 사랑할 순간들을.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자란다.
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