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숭범 Jul 17. 2023

2010년 8월 18일 교차로 날씨에 대한 회고적 성찰


   검정색 하드커버를 처음 열면 모잠비크 평원의 풍경이 걸어온다, 목화농장의 아이 이빨에서 교육 없는 과거와 굶주림 없는 미래가 정갈하게 갈라선다, 어쨌든 5번 척추뼈와 늙은 의자가 합을 맞출 즈음 박사가 되었다, 아내로 오지 못한 애인은 번호표도 없이 문밖을 서성이다 가고, 팔이 저리지 않을 자세의 낮잠은 마스터했다, 손목 속 터널에 난 사고는 끝내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주인 없는 책상마다 임자가 있는 도서관이 있었다, 나를 분리수거하려는 손들에 쫓기는 꿈을 꾸던 터였다, 오늘은 꿈인 줄 아는 세계에서 넥타이를 맨다, 처음 보는 열람실이 나를 열람하러 온다, 항상 거기 있던 책상은 서랍 안의 서랍을 내보인다, 넥타이를 조이기 좋은 손을 가진 유령이 온다, 유령들은 하나같이 두상이 크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이곳 교차로와 어울린다, 어디선가 고장 난 라디오가 기지개를 켠다     


   안개가 어제보다 가시거리를 줄이겠습니다

   당신이 밀려나면 닿는 곳 어디서든 

   바다 물결이 최고 3미터로 높게 일겠습니다     


   단 하나의 이정표에 매달린 죄, 개인연구실과 강단과 분필이 있는 마을, 가깝지만 먼 목청을 가진 새가 온종일 자기 노래에 젖는 곳, 달리고 또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 허나 여기 고속도로는 차로를 줄이는 공사 중, 시설물 보수 작업 중, 이제 와 후진은 패배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허둥대는 사이 따라붙은 고약한 유령들 사이에 끼인다, 모두 울퉁불퉁한 노면에 긁힌 흉터를 숨기지 않는다, 방음벽도 없는 도로에서 십수 년의 신음이 경쟁한다, 유령이 유령을 밀다 유령이 되기 좋은 날씨, 몇몇 유령이 다가와 에반스 매듭의 올가미로 넥타이를 고쳐준다, 아직 서른둘, 취한 잠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꿈이 꿈을 막아선다, 고장 난 라디오가 다시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쁘지만 꿈으로의 출입을 삼갈 필요는 없겠습니다 

   나이를 웃도는 한낮 최고 기온은 계속되겠습니다     


이전 02화 2016년 8월 31일 마지막 퇴근길에 대한 시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