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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Sep 10. 2023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일본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きょうは会社休みます)

감독: 카리야마 슌스케 & 나카지마 사토루 

2014년 방영


커버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tRBw02P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를 리뷰한 글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채널W. https://www.chw.co.kr/#/menu/drama.program.224

2014년. 대략 10년 전에 방영한 일본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개인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가족의 유대와 정'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개인에 대한 억압'은 많은 이들을 눈물겹게 한다. 개인 그 자체보다는 가족 안에서의 개인이 강조되고, 개인보다 개인에게 부여된 역할이 우선되는 곳에서 '나'라는 독립적인 주체는 위태롭게 존재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 늦지 않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개인의 삶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묘사된다. 적절한 나이에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심지어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서른 살 이전까지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여성은 부모가 걱정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딸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하나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잘 다니고 있고,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어디 나무랄 데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서른 살이 되도록 이성 교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려의 대상이 된다. 

이미지 출처: 채널W. https://www.chw.co.kr/#/menu/drama.program.224

부모와 자녀 간의 융합은 가족 구성원 모두를 힘들게 한다. 물리적인 독립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분리는 더욱 중요하다. 물론 아직까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자녀에게는 부모의 애정 어린 돌봄과 관심이 필요하겠지만, 자녀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가 모든 것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곤란하다. 부모가 해야 하는 일과 자녀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융합된 상태에서는 상대의 일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를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자식 농사를 잘하는 것이 부모에게 있어 큰 기쁨이자 성취가 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자녀의 성공은 자녀 개인의 삶에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것이지 그것이 부모 자신의 삶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될 수 없다.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살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와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에서 하나에는 인생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지만 하나에의 아버지는 그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낸다. 하나에의 남자친구가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누구에게 있어서든 '허락받아야 하는 관계'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인간관계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와 책임으로 맺어지는 것이지 제삼자의 허락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교제나 결혼도 당사자인 두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그것을 두고 관계 밖에 위치한 제3의 인물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을 마련하는데 돈을 보태었다고 해서 자녀 부부의 관계와 삶에 사돈들이 끼어들어도 되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이성교제와 결혼 파트너가 부모로서 못마땅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못마땅함으로 끝나야 할 부모 자신의 감정 문제이고, 그것이 실제로 자녀의 삶과 관계로까지 이어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주고, 대신 모든 것에 책임을 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미지 출처: 채널W. https://www.chw.co.kr/#/menu/drama.program.224

이성교제와 결혼은 어디까지나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다. 가족 사업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기 삶의 결정권이 있는 독립적인 주체로서 인정하고 이들이 무슨 결정을 하든 존중해야 한다. 부모로서 의견조차 내지 말고 잠자코만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때로는 자녀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내비칠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최종적인 선택의 권리와 책임은 자녀인 당사자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안 되면 부모도 불행해지고, 자녀도 불행해진다. 자녀와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부모는 혹여 자녀가 자신이 우려했던 삶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들어할까 봐 자녀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면서 전전긍긍하고, 그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살지 않아 부모와 가족에게 폐를 끼쳤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괴롭게 살아야 한다. 자녀라는 개인, 부모라는 개인에 선행하여 자녀라는 역할, 부모라는 역할이 우선될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또한,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먹여주고 재워준 투자 금액'을 환수해야 하는 일종의 투자처로 여길 때 일어나는 비극이다.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돈이 들었다고 해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이미지 출처: 채널W. https://www.chw.co.kr/#/menu/drama.program.224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에서는 '개인 그 자체'보다 '집단 내 개인의 역할'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아직 대학생이라 여자친구 하나에와 동거할 집을 스스로 보증하여 계약할 수 없는 타노쿠라는 남성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동거를 잠시 미루자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마음만 맞고, 당사자 간에 합의만 되면, 여자가 보증을 서든, 누가 돈을 더 내든,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남성 가장으로서의 성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타노쿠라의 죄책감이 이들의 동거 계획을 좌절시킨다. 또한, 드라마 내내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타나에 엄마가 앞치마를 벗고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타나에의 엄마는 항상 앞치마를 매고 부엌을 서성이며 차와 음식을 준비한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의 전형적인 엄마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사실 서른 즈음되어서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 자체도 개인보다는 개인의 역할이 강조된 사회적 압박이 반영된 것이다. 대졸과 취업 그리고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생애 과정을 제때에 거쳐야 한다는 믿음에는 개인의 지향이나 취향은 배제되어 있다. 대졸-취업-결혼-출산은 개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 법은 없다. 때로는 이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취업을 먼저 하고 개인이 원하면 뒤늦게라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이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이 맞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녀로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역할 의식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생애 과정을 마구잡이로 쫓으려고만 하다가는 뒤늦게 후회할 수 있다. 그때에 이르러 자녀가 후회하면, 그 책임은 또 부모에게 있나? "엄마, 아빠가 그때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면서!" 

이미지 출처: 채널W. https://www.chw.co.kr/#/menu/drama.program.224

자녀가 범죄나 자해와 같은 대단히 위험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는 그냥 자녀를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섣불리 개입하지 않으면서 관찰을 하라는 뜻이다. 자녀가 성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를 안 한다고 해서,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취업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자녀의 그런 모습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집단과 역할보다는 개인이 우선되어야 한다. 충만한 행복과 삶의 만족으로 가는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한국 문화는 그게 아닌데 필자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개인보다 역할과 집단이 강조되는 바람에 불행해진 한국의 가족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는가? 상대편 집안에 기죽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결혼식 하객마저도 알바로 동원하는 문화는 다소 괴상하다. 장서 갈등이나 고부 갈등은 또 어떠한가? 부모가 성인 된 자녀들의 결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가정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해서 생기는 문제다. 우리네 명절의 풍경에는 온통 성 역할로 가득 차 있고, 장인어른, 장모님, 시아버지, 시어머니, 며느리, 사위 등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는 호칭만이 가득하다. 사촌이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거나, 먼저 취직을 하면, 나는 가족 내에서 무언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너무 익숙해져서 못 느끼고 있을 뿐, '나쁜 문화'라는 것도 존재한다. 개선이 필요한 문화도 있다. 어렵겠지만 그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도 '내 자녀의 부모'라는 역할에 앞서 각자의 꿈과 소망, 희망, 취향, 지향이 있을 것이다. 역할을 뒤집어쓴 삶이 아닌, 개인인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hiphop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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