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른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A Haunting in Venice)
감독: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
202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936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몇 명이나 되는지 혹시 아는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현황에 따르면 2023년 9월 13일 기준 약 7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코로나19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부산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코로나19는 말 그대로 유령 같은 존재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했고, 우리의 삶 깊숙이 불쑥 찾아와 신체와 정신을 마구 뒤흔들었다. 당신이 의학 전문가라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와 역학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세세하고 깊은 정보를 제대로 다 알지 못한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이고, 비말에 의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니, 그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각별히 조심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유령의 존재가 두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 실체와 기원을 우리가 알지 못해서다. 공포 영화가 무서운 것은 언제 어느 시점에 관객을 놀라게 할 장면이 등장할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 아닌가? 코로나19의 공포는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에 더욱 증폭되었다. 여러 가지 설이 오가고 있지만 아직도 공식적으로 인정된 명확한 원인은 없다. 자연발생한 바이러스인지, 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이 코로나19 원인 규명 보고서를 은폐하였다는 의혹이 미국 의회에서 제기되기도 했고, 코로나19의 기원을 결국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19는 어느 날 유령처럼 우리 곁으로 슬그머니 찾아왔고, 이제는 정말로 그 존재가 오리무중의 유령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의 영어 제목은 <A Haunting in Venice>이다. 'Haunt'는 '귀신이 출몰하다'라는 뜻이며, 보통 귀신이 들린 무언가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단어다. 예리한 관찰력과 논리적인 사고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에르큘 포와로 탐정과 다소 동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진다. 미신이나 유령 따위를 믿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과 과학적인 분석은 흐려지고 정신은 혼미해지기 십상이다. 알량한 속임수와 눈가림 따위로는 결코 진실을 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서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미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중요한 신념이 크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이제껏 겪은 모든 사건들이 미스터리였지만, 이번에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사건의 주범이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베니스의 유령을 쫓는 포와로의 모습은 코로나19의 기원을 파헤치려 노력하는 현대 과학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치와 외교의 트릭이 난무하는 대혼돈 속에서 과학자들은 어떻게든 바이러스의 실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형국을 보면 어떻게든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자가 모두 뒤섞여 혼란만 가중되고 있고,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자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고, 믿기 싫은 것은 애초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팬데믹과 함께 우리는 인포데믹(infodemic)도 겪었다. 판을 치는 가짜 뉴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에 대한 가짜뉴스도 우리에게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는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포와로도 그중 한 명이다. 평생 어디를 가나 포와로의 곁에는 참혹한 사건들이 늘 운명처럼 따라붙었고, 탐정으로서 그 사건들을 멋지게 해결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과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목격하며 즐거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라우마는 제때에 적절하게 치료받지 않으면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해진다. 트라우마를 일으킨 그 충격적인 사건의 장면들이 자신을 평생 괴롭힌다. 사건에 대한 고통스러운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그런 인물들의 역동과 갈등을 그린다.
몇 년간 끔찍한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혹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엔데믹이 선언되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의 감소로 곧 더 큰 바이러스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우리를 정말로 좌절하게 한다. 의료진들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때 겪었던 그 지난한 일들을 또다시 경험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경제와 무역 그리고 국제 왕래도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 요양 시설에 계신 부모님을 오랜 기간 찾아뵙지 못하는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고, 대학가의 활기도 다시 사그라들 수 있다. 행정적으로 엔데믹은 선언되었지만 인류는 아직 코로나19의 기나긴 악몽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단으로 경험한 이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영향이 앞으로 또 어떻게 파장을 일으킬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팬데믹 뒤로 베니스 유령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이 모든 것을 명쾌하게 밝혀줄 포와로와 같은 인물이 현실에도 있으면 참 좋겠다.
hiphopstep.
참고문헌
박건희. (2023. 07. 12). "코로나19 中 유출 은폐 vs 자연 발생"...기원 놓고 '갑론을박'. 동아사이언스. retreived from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0672
이충만. (2023. 08. 27).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 것" 바이러스 유출설, 자연 발생설 등 추측만 가득. 헬스코리아뉴스. retreived from https://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802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3. 09. 14). WHO Coronavirus (COVID-19) Dashboard. retreived from https://covid19.who.int/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3. 09. 14). Infodemic. retreived from https://www.who.int/health-topics/infodemic#tab=tab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