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에서는 이혼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의외로 자주 언급된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는 이혼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이혼율이 낮았지만, 여성에게도 경제력이 생김에 따라 과거의 서양 사회처럼 이혼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혼을 하게 되면 당사자에게는 물론, 자녀에게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이혼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부모가 이혼하는 경우는 애초에 고려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프렌즈를 보면 어린 시절은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 경험하는 부모님의 이혼이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미리 알고 있어야 할 배경 지식은다음과 같다. 챈들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했고, 레이첼은 성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게 된다. 레이첼의 부모님의 이혼사유는 성격차이이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시는 부모님 탓에 동생 졸업식에서도 곤욕을 치른다.
오늘 이야기할 에피소드에서는 레이첼의 생일이라 친구들이 그녀를 위한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였다. 모니카는 레이첼의 엄마를 생일파티에 초대하였고 일부러 아빠는 초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게 되면 무조건 싸움이 붙을 것이고, 파티의 분위기가 망쳐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레이첼의 아버지가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파티 날 모니카의 집에 방문하였고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파티에 참석하기로 한다. 이때부터 레이첼의 부모님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친구들의 눈물겨운 사투를 볼 수가 있는데, 이 부분은 아주 웃픈 장면 중 하나이다. 그들은 파티 장소를 모니카네 집과 챈들러네 집으로 분리하여서 아버지는 챈들러네 집, 어머니는 모니카네 집에서 생일파티를 즐기게 된다.
레이첼이 도착하자 친구들은 본의 아니게 이중파티를 진행하게 된 것을 설명하였고, 그녀는 아빠가 있는 곳, 엄마가 있는 곳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이중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전혀 파티를 즐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엄마한테 가면 아빠 욕을 듣고, 아빠한테 가면 엄마 욕을 듣는다. 그렇게 하루종일 서로를 헐뜯는 부모님에게 시달리던 레이첼은 결국 복도로 나와 주저앉아버린다.
복도에서 그녀는 챈들러에게 이렇게 한탄한다.
Rachel : 그냥 뭔가 너무 적응이 안돼. 부모님이 서로 욕하는 걸 듣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독립기념일 생각뿐이었어.
Chandler : 왜 독립기념일이 생각나는데?
Rachel : 매년 독립기념일이 되면 가족이 다 같이 아빠 보트를 타고 불꽃놀이를 보러 갔거든.
엄마는 바닷바람에 머리 망가진다고 싫어했고, 동생은 뱃멀미로 토하고 있고, 아빠는 아무도 안 도와줄 거냐고 화내시다가 막상 도와드리면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면서 소리 지르셨어.
근데 막상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모두가 조용해졌어. 그러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담요 한 장으로 다 같이 둘러썼지. 담요를 더 챙겨 오는 걸 항상 깜박했었거든.
그런데 이젠....
(챈들러가 레이첼을 꼭 안아준다.)
누구든 이혼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실 "이혼"이라는 결과 자체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실제 이혼은 지독하고 끊임없는 싸움의 과정이자 이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레이첼도 분명 부모님이 만날 때마다 싸우고 서로를 비난하는 동안 함께 지쳐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고 이중파티처럼 기이한 상황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평소에 "자녀가 다 컸을 땐, 부부끼리 서로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되지."라고 다소 가볍게 생각했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이야기였다. 만약 나의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가족끼리 다 같이 모이기 껄끄러워진다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 쉽게 지우기 어려운 상처이자 슬픔이 되지는 않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여태껏 몰랐다.
우습게 그려졌지만, 어떻게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다룬 심오한 에피소드이기도 했던 이번 이야기에서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부모님에게 시달린 후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 하소연하는 레이첼을 챈들러와 로스가 꼭 안아주는 장면이다. 챈들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캐릭터로 나오고, 로스는 레이첼의 남자친구로 나온다.
챈들러는 같은 이혼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레이첼을 포함한 모든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상처를 감싸주는 듯했고, 로스는 그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위로받고 또다시 힘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듯했다. 우리는 '함께' 존재함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늘 그렇듯 함께함으로 상처를 치유받는다. 나는 오늘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함으로써 독자 여러분들이 위로받고 힘을 내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