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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영과 본질 Jan 01. 2024

지나간 모든 것들

 나는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지하철 역을 향해 빠르게 걷고 있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곧 도착하는 열차를 향한다. 나의 발걸음은 앞에 있는 사람 모두를 지나쳐 버릴 만큼 빠르다. 그러나 최대한 뛰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미 빠른 걸음으로도 오늘 신은 구두가 발에 상처를 낼 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다. 좀 더 길들여진 구두를 신을걸 후회한다. 휴대폰으로 지하철 시간을 보니 후회하는 것도 사치로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수밖에. 오늘도 아슬아슬 하지만 결국 지하철에 탑승했다. 나는 구석에서 가쁘게 몰아치는 숨을 조금씩 고른다.


 출근 시간이 아닌 평일의 지하철은 조금 여유롭다. 꽤나 널널하게 자리를 발견하고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듣고 있던 플레이리스트의 10번째 곡이 지날 때쯤이다. 나는 친구에게 줄 선물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가면서 챙기려고 현관 앞에 두었던 쇼핑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며 여유롭게 외출 준비를 했던 탓에 무언가에 쫓기듯 나왔던 오늘의 아침을 생각한다. 나오기 전에 뒤를 한 번이라도 돌아봤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전해주지 못하게 된 선물을 한참 아쉬워하면서도 앞을 향해 달려가는 지하철에 나는 있다.

 앞으로만 달리는 지하철은 금세 내가 내릴 곳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친구에게 선물에 대해 자초지종 설명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말해본다. 친구를 잔뜩 기대시켜 놓은 탓에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아쉬워해도 선물은 미동도 없이 현관 앞에 있을 것이다.

 친구도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두고 온 선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서두르며 준비한 탓에 선물을 두고 와버렸다고. 친구는 굉장히 아쉬워했지만 다음에 꼭 전해달라고 했다. 어쩌면 오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선물을 두고 왔기에 나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와 어떤 날보다 즐거워야 했지만 내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계속 두고 온 선물 생각이 났다. ’ 내가 뒤를 한 번만 돌아봤다면…’ 후회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의 아쉬운 마음에 친구도 신경 쓰이는 듯했다. 찝찝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친구의 생일은 건조하게 지나갔다.


 2주가 지나고 나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 선물을 전해줄 수 있었다. 다시 그 친구를 만나는 날에는 선물을 챙기고도 다시 뒤를 돌아보고 잊어버린 것이 있는지 잠시동안을 생각했다.  2주가 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선물은 물론 선물에 담긴 내 마음까지 그대로였다. 기뻐하는 친구를 보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진 느낌이다. 아침에 뒤를 한 번 돌아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으므로.

 어쩐지 생일날보다 더욱 근사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한적했다. 늦은 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다. 눈앞에는 분식을 팔고 있는 포장마차만이 반짝이고 있다.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듯. 나는 느린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친다. 포장마차를 지나치고 2초 뒤 음식 냄새가 나에게 도달한다. 나는 자리에 멈춰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서야 깨달았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나는 자연스럽게 포장마차로 들어가 떡볶이 1인분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내가 걸어왔던 뒤를 돌아보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걸어왔던 길은 눈앞에 보이는 좁은 도로를 제외하고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뒤를 보지 않아 놓친 수많은 것들도 더 이상 닿지도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멀어져 버린 걸까.


 어쩌면 나는 중요한 것들을 뒤에 둔 채로 앞만 보면서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매섭게 나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다. 항상 시간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그 시간 위의 나는 뛰거나 걷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움직인다. 마치 무빙워크 위에 서있는 것처럼. 그러나 주어진 모든 시간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멈춰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시간 위를 걷거나 달린다. 또 언제는 뒤를 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뛰곤 한다. 그 사이 수많은 것들이 지나쳐 간다.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무빙워크가 아닌 떡볶이가 놓인 포장마차 앞에서 걸어왔던 길을 본다. 그 길에서 나는 내 삶에서 지나친 수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바빠서 잊어버린 시간들과 사소한 변화도 감지했던 감각들과 자유롭게 요동치던 감정들을 마주한다. 나의 뒤에는 삶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포장마차 앞을 걷거나 지나치지 않아도 여전히 시간은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무빙워크는 예외도 자비도 없다.

 모두 똑같은 무빙워크 위에 있다면 가끔은 뒤를 돌아보려고 한다. 생각 없이 걷다가 지나쳐버린 뒤편엔 꽃밭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고개를 잠깐 돌려보기만 해도 된다. 뒤를 돌아본다 해도 당신의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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