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편식하지 않기
나는 철학과 관련된 책이나 에세이, 장문소설, 시 등의 문학들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뭐랄까 공부를 해야 하는 대상, 수행평가의 일환, 생활기록부의 한 줄 정도의 의미로만 보아왔어서 크게 나에게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의미들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시들이나 문학작품을 보면 흥미가 들긴 했으나 나는 소설 종류가 훨씬 재미있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을 더 선호했다.
그렇지만 나는 문학소설들과 유흥거리로 읽는 웹소설들을 매일매일 읽어 왔었고 나의 그 행위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생활을 잘 해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이리저리 가정상황이라던가 스스로의 마음의 힘든 부분들이 있을 때,
막상 마음이 너무 지치거나 힘들 때에는 가벼운 웹소설이든, 문학소설이 든 뭘 읽어도 마음을 단단하게 다시 만들어주진 못했고,
그냥, 마냥,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책이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임용공부 때문에도 그렇고 항상 옆에 있는 존재였지만, 그 존재가 크게 나에게 와닿지 않고 억지로 머리에 쑤셔 넣어야 하는 존재, 학습을 해야만 하는 글들로만 봤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얼마나 글을 좋아했는지, 글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글을 통해 어떻게 마음을 다졌었는지 등등을 잊었었다.
그러다가 접하게 된 에세이와 필사책.
소설을 더 즐겨보던 나였으나 에세이 안에서 작가의 삶과 생각 및 가치관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으며, 마음을 다루는 방법들이나 위로의 문장들을 보고 나는 나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필사책 안에서는 나의 중심이 되는 글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이러한 여러 에세이와 필사책을 쓰고 보면서 다양한 삶을 엿봤고, 헤쳐나가는 방법들과 위로를 얻었으며 옛날과 달리 에세이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음, 각자의 인생에 맞게 찾아오는 책들의 있는 것인지, 그 힘듦에 저절로 눈길이 가는 책이 달라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의 마음에 아주 와닿았고 나의 길을 짚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것들이 쌓여 나를 다양한 식견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것들로 인해서 풍파에 대비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방법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내가 와닿았던 방법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 내가 오늘 자그마한 무엇이든 한 것들을 하나씩 적고 칭찬의 글을 적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들을 들으며 걷기. 등이 있다.
사실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누구든 하고 있지 않은 방법이며 해보지 않았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 또한 해보지 않았던 방법이었고, 위로의 문구 들과 함께 처방한 방법들은 너무나도 나에게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듯하면서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산다.
그렇기에 이런 에세이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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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계속해서 에세이든 문학소설이든 철학책이든 책을 가리지 않고 책 편식을 하지 않고 읽어볼 생각이다.
나를 좀 더 깊은 생각과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의 고민의 해결 또한 여러 분야의 책들 속에서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장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난 영화도 그렇지만 공포물, 즉 추리소설 같은, 살인과 관련된 주제들은 정말 못 읽겠다. 공포에 앞가려 그 안의 의도들을 읽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처럼 자신의 근본적 취향을 고려하지만 책 종류에 대한 편식을 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 그런 책들을 어떻게 찾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런 책들은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야 한다.
물론 인터넷 서점도 너무나 잘 되어있지만, 직접 서점에 들러 책표지를 보고, 책 촉감을 느껴보고, 줄거리를 읽어보고, 작가의 의도도 읽어 보다 보면 나와 맞고 끌리는 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종류의 책이든 나와 끌리는 책을 찾을 수 있고, 그 공간의 시원한 공기와 책먼지 냄새에 더불어 자신이 끌린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 번 서점을 들려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