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7

03월 29일-아빠가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새들이 숲과 수풀 사이를 숨바꼭질하며 지저귀는 소리가 싱그럽다.

연초록 어린 잎새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맑고 깨끗한 아침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쁘다.


봄이 오고야 말았다. 지난 겨울은 길고 지루하고 추웠다. 아무래도 겨울의 끝자락에 입대한 아들 때문에 누구보다 봄이 오길 간절히 기대해서 더 그렇겠지. 그러던 봄이 어느 날 성큼 우리 앞에 눈 부신 햇살로 섰다. 어제는 서울 낮 기온 21도였다. 초여름 날씨다. 여름을 기다렸던 청년들이 신나는 계절이다. 출근길에 보니 아파트 앞에서 한강변으로 러닝을 하러 나가는 청년이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다. 반팔 티셔츠 밖으로 튼실한 팔뚝이 보기 좋다.


반팔 셔츠를 보니 우리 아들이 생각났다. 너는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밖은 아직 찬바람이 이는데 너는 굵직한 이두근과 팔뚝을 드러내고 반팔 차림으로 학교를 나선다.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는 시작된다.


“춥다, 스웨터나 점퍼를 입고 가거라. “

”낮에는 덥고 귀찮아요. “

엄마의 타박을 빗물처럼 가볍게 튕겨 버리고 너는 부리나케 집을 나선다. 이런 그림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고 때로는 불협화음을 가져오기도 했다. 호기로운 오빠 행세하며 이 추위에 반팔을 입고 나간 날이면 목감기가 들곤 하는 아들이 마득지 않은 엄마도 잔소리를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여보도 뭐라고 좀 해봐요!“ ”다 큰애가 알아서 하겠지. 조심해서 잘 다녀오너라. “ "당신이 그러니까 얘가 말을 안 듣잖아요!"


상황은 늘 이렇게 종료됐고. 네가 떠난 자리에 마음이 풀리지 않은 엄마의 나머지 잔소리는 고스란히 아빠 몫이었다. 때 이른 반팔을 고집하는 아들로 인해 엄마는 환절기를 싫어했다.


창밖의 겨울 나목들에 연초록 생명이 하루가 다르게 번지는 것이 경이롭다. 지난겨울을 대견하게 모두 잘 버텨주었다. 잿빛 메마른 가지에 연초록 어린잎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이 푸른 생명의 기운이 온 대지에 퍼지면 논산의 훈련소에도 봄의 온기가 환하게 퍼지겠지? 아빠 기억 속에 훈련소 건물은 햇빛이 잘 들지 않은 곳에 각진 콘크리트 4층 건물이었다. 아무렇게나 칠해진 촌스런 색상의 페인트 건물에는 습하고 냉한 기운이 배어 있었고 30여 명이 함께 누웠던 내무반의 매트리스와 이불도 습하고 무거웠다.


하지만 20대의 건장한 남자들이 모인 세상은 유쾌했다. 하루 훈련을 마치고 밥 먹고 씻고 내무반에 돌아오면 노래와 춤과 유머의 끼로 무장된 청년들이 저마다 재주를 쏟아 놓았다.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우린 웃고 떠들다가 힘겨운 하루의 훈련을 모두 잊고 곯아떨어지곤 했다. 지금 우리 아들의 내무반은 어떤 분위기일까? 우리 아들의 재치와 열정이 다른 동료들의 고단한 그림자를 떨쳐 주었을까?


네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 대입 문제집 총판 사장님이 조용히 옆에 앉았다. 한 30분쯤 차를 마시며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고 갔다. 대입 준비를 위해 필요한 방과후 부교재가 새로 나왔다고 몇 권 놓고 갔다. 아빠보다 서너 살 위인 그분은 고달픈 인생을 살았더구나. 중견 출판사 사장으로 성공해서 사업을 확장했다가 IMF에 직격탄을 맞았다. 사업은 망하고 재산도 집도 잃고 빚더미를 떠안고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가족을 생각하자 그대로 누워있을 수 없어서 재활 끝에 다시 일어선 지 2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분이 나가면서 얘기한다.

” 살아서 건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행복한 것이지요. “


사는 일이 쉽지 않구나. 사람 좋고 늘 호탕하게 웃는 분이었는데 그런 사연을 가진 줄 몰랐다.


시편 90편 10~11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라는 모세의 고백이다.

너도 알 듯이 모세는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 이집트 왕자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아도 보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무명의 삶을 살다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한 삶을 산 후에 인생을 돌아보며 어떠한 삶이 지혜로운 인생인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시편이다.


모세의 시편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늘 계산하며 하나님 앞에 서라.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땅의 성공, 부, 편함, 나의 욕망,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들은 안개와 바람, 연기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지혜임을 말한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며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한다.


아빠도 묵상을 통해 이런 모세의 고백이 나의 것이 되도록 힘써 보려 한다. 그렇게 하니 삶의 무게가 가볍구나. 날마다 앞을 보고 기쁘게 살게 되더구나.


우리 아들이 오늘 하루도 행복하길 기도한다.


주안에서 강건하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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