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28일-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목요일에 밤이 깊어가는구나. 우리 아들이 입대한 지 25일 되는 날이다.
아들과 가장 오랜 이별의 시간이다. 너는 훈련받느라 눈코 뜰 새 없고 우리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겠지?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장성해도 품 안에 자식이다. 부모보다 더 크고 더 똑똑해진 걸 알면서도 자식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애잔하구나.
오늘은 아빠와 엄마가 만난 지 30년 된 날이다. 한 사람과 30년을 알고 지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부부로 30년을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가히 기적이다. 시간은 거슬러 1985년으로 돌아간다. 막 대학생이 된 풋풋한 새내기 엄마와 대학 3학년이던 아빠가 아빠 대학 캠퍼스 분수대 앞에서 처음 만났다. 엄마는 다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사자머리에 청바지, 촌티 나는 회색 점퍼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00 오빠~”라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반짝이는 눈을 가진 예쁜 소녀가 서 있었다. 우린 그렇게 만났다. 우리의 첫 만남은 눈물 콧물 빼는 잊지 못할 추억의 날이었다.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냐고? 천만에! 네가 알 듯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미팅에 나가려면 유머책을 30분쯤 뒤적거려 메모하고 외워서 어색한 분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는 사람이다.
엄마와 만나서 어색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몇 마디 주고받자마자 캠퍼스에 전투 경찰이 난입했다. 정문 근처에서 시위하던 대학생들이 사방으로 도망 다녔고 진압군들이 마구 쏘아대는 최루탄 가스로 캠퍼스는 아수라장이 됐다. 우리는 첫 만남부터 눈물, 콧물을 뺐다. 그런데 웬 횡재(?)니! 아빠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캠퍼스 후문을 향해 줄달음을 쳤다.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은 한 두 차례 이어졌다가 몇 달 후인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빠는 입대했다. 아빠는 첫 만남부터 엄마를 마음에 담았다. 하지만 이따금 편지를 쓰는 정도로 마음을 자제했다. 곧 입대가 예정돼 있어서다. 만난 지 몇 개월 안 됐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32개월을 기다려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의 같은 학과 여사친이 자기 여동생을 소개해준 것이니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아빠는 공군에 입대했다. 휴가 나오면 몇 번 만났다. 그게 전부였는데 어찌어찌 인연이 돼서 30년을 부부로 또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었으니 아빠는 그야말로 횡재한 거다.
성경은 아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아내를 통해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성경적 관점이다.
시편 128을 보면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아빠는 성공한 인생이다.
아빠는 네가 청소년의 시기에 들어설 때부터 너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네가 잘 성장하도록 도운 후에 네가 배필을 만나 우리를 떠나갈 때까지 힘을 다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 생각한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재미없는 아빠는
“여보, 오늘이 우리 만난 30주년이야, 맛있는 것 먹고 선물도 사자!”
“아이가 훈련받고 있는데 우리만 맛있는 것 먹을 순 없지! 우리의 삶을 기억할 만한 기념품을 하나 사자!”
근처의 가구점으로 갔다. 현관 앞에 앤틱 한 둥근 거울을 매달자고 했다. 둥글둥글 싱글싱글한 마음으로 집에 드나들면서 맑고 깨끗한 거울을 보며 서로에게 감사하자는 엄마의 생각에 아빠도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 아들은 현관 입구에 머물러 섰는 것을 싫어했지? 이제는 잘 생긴 네 얼굴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살필 수 있는 단아한 원형 거울을 보게 될 거야. 너도 마음에 들 거다. 현관 앞에서 머리를 정돈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너의 모습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니. 훈련이 고되지? 잘 이겨내고 있지? 우리 아들의 체력, 정신력, 순발력, 근육의 파워 등을 생각하면 해병대도 가능할 텐데, 무릎이 고장 나서 여전히 걱정이다. 집에서야 아프면 쉬면 되지만, 훈련병 기간은 계속 무릎에 무리가 갈 텐데 마음이 안 놓인다. 담당 소대장님의 전화번호를 보내줘서 네 상황을 설명했다. 무릎 촬영 사진과 진단서도 스캔해서 보냈다.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회신을 받고 마음은 좀 놓이는구나.
아들아, 사격은 어땠니? 총쏘기를 좋아해서 실물과 흡사한 비비탄 권총으로 사격 놀이를 하곤 했는데 실전에서는 할만하던? 표적지의 정중앙에 명중했니?. 나중에 얘기해 다오.
아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얘기하다 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구나.
우리 아들은 꿈나라고 가고 있겠지? 아들아 푹 잘 자거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