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27일-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다
아직 직장에 있다. 오늘은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이 내렸다. 연초록 잎새가 움트기 시작한 창밖의 나무들에 흰꽃이 피었구나. 눈 덮인 어린 잎새들이 괜찮을까? 작고 여린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어린 시절 너는 엄마 아빠 검딱지였다. 마음먹고 산 유모차를 쓰지도 못하고 남을 줬던 생각이 난다. 네가 유모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깜빡 잠든 너를 살며시 유모차에 누이고 산책의 첫발을 떼는 순간 눈을 번쩍 뜨곤 했다. 그리고는 “안아, 안아!”를 연신 외치다가 유모차에서 뒤로 돌아 벌떡 일어서곤 했다. 가슴에 안고서야 다시 잠들었다. 유모차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지. 그런 네가 이제는 훌쩍 자라 아빠보다 키도 어깨도 한 뺨은 더 커졌다. 그런 아들과 나란히 걷는 아빠의 든든한 마음을 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 알게 될 거다.
네가 입대하기 전날 밤이다. 친구들이 환송회를 치러 준다고 낮에 환하게 웃고 나간 네가 새벽 1시 30분이 넘었는데 연락이 안 된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안절부절못하던 엄마에게 네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저 00이 친구 **이에요. 00 이가 술이 취해서 저희가 택시에 태워서 아파트 입구에 내려 주었어요. 집에 들어왔지요? ”, “ 아니! 아직 집에 안 들어왔다! 그게 몇 시였니?”
시계를 보았다. **이가 말한 시간은 12시였다. 지금은 1시 30분이다. 밖은 영하 5도다. 아빠는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문밖으로 뛰듯이 나갔다. 아파트 주변을 넋 나간 사람처럼 뛰어다니다가 어둠 속에서 너를 찾아냈다. 이미 불이 꺼진 집 앞 스포츠 센터의 현관 기둥 벽에 너는 구겨진 옷가지처럼 아무렇게나 기대서 눈을 덮어쓰고 잠들어 있었다.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불러도 인사불성이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진동했고 괴로운지 못 알아들을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안 가요! 안 간다고요!"
라고 외쳤다. 입대를 코 앞에 두고 괴로웠던 것이다. 아빠는 가슴이 철렁했다. 너는 평소 술을 안 마셨다. 이 추위에 1시간 30분이 넘게 잠들어 있던 네 얼굴과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너를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고 간 친구들이 한없이 야속했다. 아빠는 너를 깨우지 않고 들러매고 집에 들어와서 옷을 벗기고 따뜻한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씻겼다. 꽁꽁 언 손 발을 마사지한 후에 방에 누이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제야 네 옷을 볼 수 있었다. 진흙과 코피, 구토 분비물 등이 짓이겨진 옷에서 악취가 났다. 도대체 어디에 쓰러져 있었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간 네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엉망이 된 네 옷을 엄마 몰래 화장실로 가져와서 손빨래를 했다. 아빠는 안도의 긴 한숨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수 없이 반복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너를 쉽게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밖은 영하 5도 눈 내리는 추운 날씨인데 엄마, 아빠가 그날 밤 너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면, 친구들이 확인 전화를 주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 쓰러져 잠들어 있어서 널 찾지 못했다면······.
군대를 안 가겠다는 너를 강제로 입대시킨 것은 아빠였다. 나라 없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의무로 정한 일을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빠지는 사람은 정의롭지 않고 나중에 자기 소리를 낼 수 없다고 아빠는 널 설득했다. 너는 다른 나라 영주권자이고 졸업 후에 곧바로 해외에 취업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을 배워야 한다고 군복무를 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정반대 편에 서있었고 너는 아빠를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퇴근길에 우편함에서 병무청에서 온 입영 통지서를 발견한 아빠는 망설임 끝에 자원입대에 표시를 하고 우체통에 넣었다. 그래서 너는 군대에 가게 됐고 어제까지 아빠의 만행을 이해하려고 무척 힘들어했다. 아빠는 글썽거리는 엄마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결과를 상상하든 심하게 도리질 칠만큼 정신이 아찔했다. 아빠가 매일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내 만행에 대한 일종의 참회록 같은 것이다.
다음 날은 입대하는 날이었다. 아침까지 술냄새가 진동하는 너를 어렵게 깨웠다. 비몽사몽 간에 샤워하고 나온 너는 물 한잔 마시고 차 뒷좌석에 누웠다. 논산길은 왜 그렇게 멀고도 먼지, 뒷좌석에서 드르렁 거리며 코 골고 자는 아들 녀석을 룸밀러로 보는 아빠 마음은 무거웠다. 어디 사정할 때라도 있으면 하루 푹 재워서 내일 보냈으면 싶었다. 논산 근처에 도착해서 널 깨우고 근처 고깃집에 들어갔다. 속이 부대 꼈는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네가 좋아하는 양념 소불고기 2인분을 반도 못 먹고 그대로 남겨두고 물만 들이켰다.
너는 인사도 채 하지 않고 말없이 걷다가 논산 훈련소 입구에 멈춰 서서 고개만 약간 돌리고 힘 없이 미소를 짓고는 들어갔다. 너를 강제로 입대시키고 안절부절못하는 아빠의 무모함을 용서하는 웃음이라고 억지로 해석했다. 입소식의 대열로 허위적 허위적 걸어가는 네 뒷모습을 눈으로 애써 따라가면서 엄마는 눈가를 찍어 눌렀다. 군중 사이에 섞인 너를 놓치지 않으려고 엄마는 인파를 헤치고 뛰었다. 연병장에는 훈련병들이 속속들이 집합하고 있었다. 오늘 소집 인원이 1786이라고 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아들을 찾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1786명의 훈련병 속에서 단번에 너를 찾아냈다.
“우리 아들이 네 번째 줄에서 뒤에서 열 번째 있어! ”
무슨 이유에선지 연신 뒤로 고개를 돌리는 너에게 엄마가 여기 있다고 보란 듯이 손을 흔들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너희들은 연병장을 크게 한번 돌았다. 엄마는 빠르게 뒤를 밟았고 반바퀴나 운동장을 도는 구보 대열에서 너를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마이크에서는 병과 별로 호명을 했다. 카츄사에 이어서 어학병을 호명했다. 25명이 빠르게 뛰어나왔고 엄마는 그중에서 너를 찾고는
“작은 수의 아이들만 뽑아 놓았으니 그렇게 애먹이지는 않겠지?”
라고 했다. 너는 동료들과 함께 한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사랑하는 아들아.
수료식이 모두 끝나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한동안 말이 없던 엄마가
“우리 아들이 멋지게 잘 해내겠지? 그지? 암 잘 해낼 거야!”
누구보고 들으라는 건지 혼잣말인지 몇 번이고 반복한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니까 잘 해낼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빠가 거들었다.
아직 직장이다. 저녁 먹고 책상에 앉아 깜빡 졸았다. 업무를 마저 마무리하고 내가 뭘 했는지 아니? 이제까지 아들에게 쓴 인터넷 편지를 모두 출력했다. 훈련소 홈페이지에서 한 페이지씩 카피하고 붙여 넣는 단순 노동으로 최종 출력을 했다. 그리고 클리어 파일에 꽂었다. 맨 앞장은 네가 보내준 훈련소 첫 사진으로 장식했다. 이렇게 하니 네 빈자리가 되살아 나는 느낌이다. 흘러가는 시냇물을 돌무더기를 쌓아 가둬 놓은 뒤에 찰랑거리는 물을 보듯 풍성한 기분이 든다. 시간과 추억의 샘물을 다시 길어 올리는듯한 생각도 든다. 묘한 느낌이다. 낚시 끝에 튼실한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의 은근한 충족감이 느껴져 스스로 웃었다.
컴퓨터에서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온다. 내가 군대 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오늘 네게 편지 쓰기를 마치면 레모니 스니켓의 A story of Unfortunate 제6권을 계속해서 읽을 생각이다. 책상 위엔 네가 놓고 간 작은 전자 사전을 펼쳐 놓았다. 이렇게 몇 날을 보내면 우리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들아, 이렇게 너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으면 생각의 촉수가 길게 뻗쳐서 어디선가 훈련을 받고 있을 네게 닿는 것 같구나. 그래서 기회가 되면 더 자주 네게 글을 쓰게 된다. 이번 주간과 다음 주가 훈련의 피크일 듯하구나. 훈련의 강도도 더 세지고 주변 환경이 더 힘겨울 수 있겠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스려 더 강해지는 네 모습을 연상한다. 편지를 쓰는 일이 네 현실을 모르는 채 그저 생각 만으로 격려하고 추측하고 또 네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구나. 하지만 우리에게 편지 쓰는 일은 기도처럼 거룩한 하루 일과란다. 이일을 우리가 매일 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아들아 사랑하고 축복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