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26일-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굿 모닝!
어제 내린 비로 공기가 청량하다. 학교 뒤 숲이 연초록으로 짙어진다. 꾀꼬리이며 꿩이며 이름 모를 새들의 힘찬 노랫소리가 싱그럽다.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아침이다. 그래도 여전히 차가운 냉기에 몸을 움츠린다.
이 시간 우리 아들의 아침은 어떨까? 훈련소에도 아침해가 눈부시게 떠오르겠지? 피로로 지쳐 잠든 몸이 간밤의 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되면 아침 햇살이 상쾌할 것 같다. 우리 아들에게도 새날의 태양이 반가운 힘의 근원이 되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너의 급격한 환경 변화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너는 새로운 환경을 재해석해서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힘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처음 겪는 문화와 환경 게다가 중국어는 넓은 대륙에 첫발을 디딘 우리를 긴장하고 움츠러들게 했다.
중국에는 1년 살았지만 다행히 너의 중국어는 가파른 속도로 늘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도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느라 코가 석 자였다. 주중에는 너와 엄마를 돌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한 일은 사범대학교 중국어학 3학년이었던 중국여자 선생님, ‘린’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일주일에 5일을 집에 와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같이 저녁을 먹고, 토요일은 온종일 함께 지냈던 기억이 난다. 아침을 먹고 함께 중국의 거리를 다니며 쇼핑하고 동네 한 바퀴를 하며, 밥 먹고 차 마시고 저녁때에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날 즈음에 너는 제일 기초반에서 5단계를 뛰어서 최상위 바로 아래 반이 되었다. 최상위 반은 그곳에서 태어났거나 10년 가까이 산 아이들이 공부하는 반인 것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성장이었다. 중국을 1년 만에 떠나서 중국어 공부에 더 전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섯 번째 온 너의 편지를 보면서 우리 아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서서히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은 아빠의 기쁨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 는 말이 있지? 적어도 이번은 거짓이다. 우리 아들이 곁에 없는 동안 너의 안위를 더 많이 걱정하고 기도하고 한 순간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생각의 실타래를 매일 글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서로의 노력의 여지에 따라 영적 연대나 묶임(Soul tie)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엄마는 너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꿈에서 너를 보더구나. 하지만 아빠는 엄마의 수준에 못 미쳤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꿈에서 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이름을 부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좀처럼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너는 자라가면서 특별히 속 썩인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불쑥 중국을 선택해서 한국을 떠난 아빠에게 너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꼬면서 “어디든지 아빠와 함께 간다!”라고 응답해 줬다. 또 1년 뒤에 홍콩으로 떠났을 때도 너는 흔쾌히 같은 표시를 하며 아빠의 선택을 응원했다. 너는 엄마와 함께 나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두 사람 덕분에 아빠는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선택하는 일에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너는 살아오면서 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민 생활은 상상한 것 과는 달리 고달팠다. 가장이 고달팠으면 가족은 어땠을까?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나온 사람들의 삶은 풍족했다. 회사에서 좋은 주택을 제공하고 넉넉한 정착비와 생활비를 제공한다. 반면에 아빠와 같은 선택을 해서 나온 교사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작은 월급에서 대부분 개인이 정착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인가 친구 생일 파티에 다녀온 너는 한참을 그날의 일을 얘기했다.
“엄마, 아빠 재밌게 잘 놀다 왔어. 맛있는 음식도 많았고 친구들도 많이 왔어. 다 먹고 나서는 친구 방에 가서 게임도 하고 신나게 놀았어. 그런데 아파트가 굉장히 크더라, 우리 집 두 배도 넘는 것 같아.”
아빠는 이 말을 하는 너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잘 놀고 왔다는 말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네 뒷모습 어디에도 불평이나 그늘이 없었다. 그 후에도 같은 일은 반복됐고 중국을 떠나 홍콩에 간 후에도 너는 아빠가 만들어 논 현실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주택 임대 비용 탓에 우리는 더 작은 집에 살아야 했다. 그래도 너는 누구보다 씩씩했고 엄마 아빠를 빛나게 했다. 아빠는 지금도 이런 네가 고맙다.
엄마는 네 편지가 오면 눈시울이 젖는다. 네가 우리 곁을 떠나 있는 가장 오랜 날들이라는 것이다. 어제는 퇴근하니 엄마의 눈가가 빨갛더구나. 네 편지는 없었다. 왜? 울었어? 했더니, 문득 아들이 어찌나 그립던지 네 방에 들어가서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단다. 엄마는 달력에 아들이 군대 간 날들을 하루씩 표시하고 날짜를 센단다. 텅 빈 네 방에 들어가 네가 읽던 책이며 즐겨 입던 옷가지를 쓰다듬으며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지켜 보호하셔서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 역시 너와 함께 하던 운동도 산책도 별 흥미가 없구나. 거실로 나왔다. 너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영화관에도 자주 갔지만 집에서 영화를 볼 때면 네 발걸음은 바빠진다.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면,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가져온다. 함께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보던 거실의 모습이 생생하구나. 네가 선정한 영화는 대부분 아빠와 취향이 일치했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네가 좋아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오면 그가 나온 영화와 캐릭터들을 정리하며 신바람 나게 얘기하던 너의 모습이 생생하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지 알지? 특별할 것 없이 묵묵히 살아온 아빠의 인생에 너는 반짝이는 별이다. 처음 아이를 키워본 엄마 아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았고 너를 아프게 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말하지 못한 아픈 기억들이 있으면 너그럽게 우리를 용서해 다오. 특히 이번 너의 군입대를 무작정 밀어붙인 아빠가 원망스럽겠지. 단언컨대 시간이 지나면 왜 아빠가 군대를 가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언제나 우리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았단다. 눈부시게 멋진 일을 했을 때는 더없이 자랑스러워하며 칭찬했고, 가끔 한 바탕 말썽을 일으켰을 땐 조용히 타이르고 우리 아들이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사춘기를 보내고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네 성장의 나이테마다, 선명하고 튼실한 성장의 줄기마다 아빠는 벅찬 기쁨으로 네 곁에 있었단다. 아빠는 네 곁에서 큰 나무처럼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삶이 버겁고 힘겨울 때면 하나님을 찾겠지만, 이런 아빠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와서 아무말 없이 쉬고 기대고 가렴.
창밖 숲에서는 아침보다 꾀꼬리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평화로운 아침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과 음성이 느껴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한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