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8

03월 30일-아빠가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사무실에 출근했다. 아침 7시 19분.
창밖에 아침 햇살이 엷게 퍼지고 아침 새들의 스타카토식 짧은 지저귐이 분주하게 들리는 생동감 넘치는 아침이다. 창문을 열었다. 얼굴에 부딪히는 차고 청량한 공기가 상쾌하다.


예전에는 해 질 녘의 황혼 시간이 좋았다. "개늑시"라고 하지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구나. "개와 늑대의 시간" 은 해가 지면서 낮과 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서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에서 비롯된 표현이란다. 일몰의 시간에는 오렌지톤의 다양한 붉은빛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낮과 밤의 경계가 주는 눈과 마음의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해야 할 하루의 일과를 어느 정도 매듭짓고 이제부터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이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경쾌한 새소리와 눈부신 햇살로 시작되는 이 아침이 좋구나. 어둠을 깨치고 활기차게 아침을 살아가는 창 밖의 자연들이 내게 "너도 해봐 새 날을 살아봐!"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초록잎이 움트는 나무들과 수풀, 그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나는 새들의 울음소리, 그 위에 쏟아지는 싱그러운 햇살,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서 누리는 선물 같구나.


논산 훈련소의 아침도 이와 같을까? 훈련소의 아침은 젊음의 함성과 열기로 들썩들썩한 용광로일 듯하다. 훈련병들이 하루하루 떨구는 땀방울이 이 작고 불안정한 나라에 깃들여 사는 가족들이 오늘 하루도 편안하게 누리고 살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아빠는 믿는다. 아들을 군대 보낸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걱정과 함께 너희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으면 좋겠다. 논산 훈련병 편지 쓰기 사이트에는 군에 보낸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의 서신들로 늘 북새통이다. 타이틀만 보아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 걱정과 근심의 눈물이 금방이라도 배어 나올 듯하다.


갑자기 창밖의 요란한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침 햇살도 물속에 톡 하고 떨어 뜨린 물감 방울 마냥 조심스럽게 퍼져 하얗게 희석됐다. 이렇게 아침은 낮으로 바통을 넘겨주나 보다. 굵고 투박한 새소리가 들린다. 좀 더 큰 새들이 날아왔나 보다. 표정 없는 낮고 탁한 소리로 운다. 아침이 별로 반갑지 않은 투다. 뒤이어 맑고 고운 새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장난스럽고 흥겹고 호흡이 긴 소리다. 보이진 않지만 날렵한 몸에 작은 부리, 가벼운 날갯짓으로 가지에서 가지로 가볍게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는 새일 것 같다. 하늘을 보니 새들이 푸른 하늘에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우리 아들도 이렇게 기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달란트와 즐거움, 그리고 열정을 잘 조화시켜 노래하듯 훈련과 노동의 고통을 떨쳐내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1970년 미국 작가 리처드 바크가 쓴 소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의 주인공은 갈매기 조나단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자신의 행복을 누리고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위대한 갈매기로 그려진다. 단지 먹이를 위해 하늘을 나는 평범한 갈매기가 아니라 비행 그 자체를 사랑했고, 멋지게 날기를 꿈꾸며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고단한 비상의 꿈을 꾼다.


조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갈매기 사회의 오랜 관습에 저항하는 것으로 여겨져 그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하지만, 동료들의 배척과 자신의 한계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초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날아올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또한 동료 갈매기들을 자신과 같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가르친다.

소설 '갈매기의 꿈'은 자유의 참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상을 꿈꾸는 한 마리의 갈매기가 꿋꿋하게 자신의 꿈에 도전하며 자기완성과 성장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이다. 조나단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도 날마다 성장하는 자신을 느낄 때가 아닐까?


사랑하는 아들아


어제 네 편지에서 분대장 하고 잠시 이발병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방금 네 명의 머리를 밀었다는 네 말에 빵 터졌다. 근육질의 거구가 이발기로 동료들 머리를 미는 장면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부엌에서 엄마가 수료식 때 무슨 음식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은 날씨와 때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이니 매번 물어보란다. 지난 편지에 고기, 밥, 치킨을 콕 집어 줘서 고맙구나. 그래도 엄마는 우리 아들이 좋아했던 김치찌개를 준비해야 할까 생각 중이다. 잡채, 떡볶이, 과일, 탄산수, 던킨도너츠등 목록을 몇 번이나 고쳤다.


감기와 폐렴이 돈다니 걱정이구나. 손발 깨끗이 씻고, 코와 입을 절대로 만지지 말도록 해라. 다행히 훈련소에서 오침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구나. 그리고 잘 지내고 행복하게 보낸다니 더 감사하다.
부대 부식이 건강한 식단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미식가인 네 입맛에 든다니 다행이다. 원래 훈련소에서는 살이 많이 찐단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라. 지치고 힘든 훈련병 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먹어야 고된 일정을 이겨낼 수 있단다. 자대배치받으면 훨씬 여유롭게 식사를 조절할 수 있단다.


이제 2주 남았다. 기대가 된다. 우리 아들이 부르는 군가가 아빠의 귀와 입에도 생생하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을 마치고 석양이 질 무렵 국기 하강식을 할 때면


"군가를 따라 부르면 조국애가 샘솟듯 합니다. 참 살다볼 일입니다."


라는 네 말에 아빠는 고맙고 감사하는구나. 너를 강제로 군대 보낸 아빠의 죄책감이 한시름 놓인다.


사랑하는 아들아


진정한 성장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빠가

keyword
이전 07화입영편지(2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