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은 감정으로 남기지 말자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화려한 건물도, 유명한 학원도 없는 섬 동네.
하지만 내 부모님은 그 어떤 도시 사람들보다도 강한 ‘교육에 대한 의지‘를 품고 계셨다. 유학까지도 생각하시고 계셨다.
아들을 위해 조금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러나 미국 유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고, 외국에서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였다. 그 시기에
제주도에서 해외 유학을 생각하거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현실은 막막했고, 정보는 없었고 성공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에서 ‘남 탓’을 지우기로 했다.
내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겠다고
언제나 되뇌이고 있었다.
수백억의 가치가 담긴 부모님의 가르침
내 어머니는 친할머니로부터 쌀집을 물려 받아 성심성의껏 운영하셨다. “어짜피 남 줄거, 좋은 쌀 줘야지”라고 하시며 넉넉하게 손님들께 챙겨주시는 어머니의 그릇을 보고 있자면,
장사하는 어른의 말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처럼 느껴졌다.힘들어도, 성실하게 남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가슴속에 깊게 새겼다.
아버지는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사셨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셔서 출근하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시간, 늘 같은 자리
출근이라는 단어에는 “성실”이라는 단어가 함께 묻어났다.
이렇듯 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주어진 책임감을 다하며.
남에게 기대지말자고 다짐했고,
누가 기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러워하지만 말고 그 주인공이 내가 되어보자
공부를 그닥 잘하지도 않던 내가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 받아본 등수는 250등 언저리. 의지보다 내 머리는 좋지 않았고,
공부할 의욕도 없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딱 한명에게
캐나다 어학연수를 장학금의 기회가 주어졌다.
무료로. 항공권까지 포함해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다. 그 아이가 멋져보였고, 나도 그리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러움을 감정으로만 남기지말자”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없을까”
그래서 난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12시간씩.
제주도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그 노력은 언제부턴가 실력이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영어 시험에서 단 한개도 틀리지 않게 되었다. 교무실은 나의 학원이 되었고, 선생님들은 나의 과외선생님이었다. 끈질기게 질문하고, 반복해서 피드백을 받았다
누구보다 절박했고, 누구보다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때 우연처럼 제주도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샌프란시스코 교환학생을 보내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난 망설이지 않았다. 지원했고, 합격했다. 부러움이 내 안에서 실현으로 바뀐 순간. 그 합격의 순간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학교를 다니던 그 기억은 여전히 내게 자산으로 남아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성공 경험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늘 기회는 존재한다. 단지, 준비된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낚아챌 뿐이다.
부모님은 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부모님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지가 나에게 스스로 찾고 행동할 이유가 되어주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내가 가진 게 없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자.
“그 안에서도, 나는 방법을 찾겠다”라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가진 가장 작고 초라한 자원을 가지고도
언젠가는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오늘,
그 부러움을 감정으로만 남기지 말자.
그 감정을 방향으로 바꾸고,
그 방향을 행동으로 만들어보자.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누군가의 꿈이 시작된 자리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064,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