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끝까지

클래식음악과 보디빌딩

by 김대리 클래식

고3 겨울이었다.

안타까운 수능점수에 좋은 대학 진학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친구들은 좋은 명문대를 가고, 벌써 목표를 이뤄 달려나가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중이었지만

나는 늘, “시작조차 하지 못한 쪽”에 서 있었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들어온

텅 빈 방구석, 한번쯤은 나도 무엇인가를 제대로 해봐야하는데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내 삶이 자꾸 미워졌다.


‘끝까지 해본 적이 있었던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스스로 되물었다.


이제 혼자 살아가는 인생에

모두가 다 운명이 정해졌다고 나를 판단할 때,

나는 조용히 끝까지 가보자라는 결심을 했다.


비록 뒤늦게 시작하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해보고자 하는 마음

보디빌딩은 근성의 철학이었다


대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했을 때,

보디빌딩은 나에겐 뽐내기 위한 운동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을 참는 운동이었다.


어제보다 더 무게를 들기 위해,

어제보다 더 지방을 연소시키기 위해,

닭가슴살을 씹고, 수면시간을 줄이고

무거운 쇳덩이를 아무 말 없이 반복적으로 올려야 했다.


대학생으로서 운이 좋아 머슬매니아 대회에 나갔을때에도

혼자서 선수 피티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매주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과외비를 벌었고,

졸리지만 새벽까지 전공 공부를 해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은 정말 행복했지만,

동시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헬스장은 내게 고통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공부를 해야할 때, 취업을 준비해야할 때

도대체 무얼 하고 있냐고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다.


“이걸 해서 뭐가 되는데?”

“그 시간에 스펙을 쌓지 그래?”


하지만 그 말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건 이것이었다.

“넌 도중에 또 포기할 거야? 이번엔 끝까지 해볼 수 있어?”

내겐 고통스러운 질문이지만, 스스로를 버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달려갔다.

언제나 피트니스 매거진에 내가 나오는게 꿈이었던 그날, 꿈을 이뤘다
제주도로 다시 돌아온 나


대기업 신입 공채 합격의 꿈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군대에서처럼 자대 배치를 받고 근무한 곳은 제주도 지사였다.


고향에서 살고 싶어서,

그리고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그 곳. 그러나 오히려 괴로웠다.


현지에 인력이 너무 적어, 에너지 사업을 혼자 했어야만 했다.

신입 2년차가 했던 사업이 태양광 에너지 사업.

직접 제안하고, 직접 전략을 짜고,

직접 사업 수행을 했어야 했다.

말은 멋져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한 전쟁이었다.

협력사 관리, 물품 발주 및 납품, 사업 실행,

주민 응대까지 내가 휴가를 낸다는 것은 사업의 중단을 의미.

혼자였고, 그저 버티는 일이 전부였다.


스트레스로 늘 배가 고팠고,

폭식은 버릇처럼 반복됐다. 체중은 105킬로까지 불어났고

내 감정도 삶도 방치되고 있었다.


클래식은 감정의 근육이었고,
이번에도 끝까지


이때 나를 다시 잡아준 것이 클래식음악이었다.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스스로 나를 다독였다.

음악을 들으며 감정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조금씩 정돈된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연주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클래식은

그날 있었던 짜증, 외로움, 억울함을

휘발시키는 음악이 아니었다.

감정들을 끝까지 끌어안게 해주는,

묵직한 숨소리 같은 음악이었다.


나는 그때 감정이란 걸 참아내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정리해가는 거라는 걸 처음 배웠다.

2년이 안되었지만, 400여개의 글을 썼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음악 블로그를 시작했다.

누가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날 들은 음악,

그날 느낀 감정,

그날 견딘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썼다.


나는 내 감정을 날려버리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매일 정리했고, 끝까지 기록했다.

그게 내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간 방식이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나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끝까지 써내려갔다.


보디빌딩과 클래식


보디빌딩과 클래식, 둘은 너무 달랐지만

내 안에서는 정확히 하나였다


하나는 몸의 무게를 다뤘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무게를 다뤘다.


쇳덩이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선율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하체를 찢어가며 스쿼트를 할 때나,

공연장에서 홀로 앉아 마지막 음표를 삼킬 때나

나는 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걸 끝까지 해보자.”


나의 이야기로부터


요즘은 무언가를 끝까지 한다는 게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건의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불확실한 미래, 계속 밀려오는 변화,

쉽게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시대.


그래서 더 어렵다.

끝까지 해보는 것,

끝까지 감당해보는 것.

클래식 한 곡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글 하나도 끝까지 쓰지 못한 채,

자기 자신마저 도중에 휘발되는 시대.


그런 시대에 나는 감정을 기록했고,

몸을 훈련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루틴을

조용히, 끝까지 반복했다.


어쩌면 지금,

그만두고 싶은 건 결과가 너무 작아 보여서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아도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자기 삶을 진짜 안아본 사람이다.


그렇게 끝까지 달려보던 나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낙담하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며 나를 다독이고,


지금 어디에선가 무엇이든간에

우직하게 스스로 달리다가 지치고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응원하고 싶다.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끝까지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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