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처음으로 텃밭 농사를 시작했을 때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온갖 모종을 심고 씨앗을 파종했다. 오이, 가지. 토마토는 물론 수박, 참외 모종을 심고 여주와 아스파라거스까지 심었다. 씨로 뿌리는 것으로는 각종 상추나 아욱이며 쑥갓은 물론 당근, 근대, 양배추, 케일, 브로콜리에 비트와 옥수수까지 심었다. 여기에 감자며 고구마도 심고 땅콩, 고추, 들깨와 마늘 농사까지 지었으니 백여 평 남짓한 우리 집 텃밭은 그야말로 만물상이요, 채소 백화점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동네 어른은 우리 집 텃밭을 보더니 무슨 소꿉장난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양반 보기에는 손바닥만 한 땅에 만물상을 차렸으니 어찌 감당하랴 싶었나 보다. 더구나 내가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않고 오만가지 농사를 다 짓겠다고 덤볐으니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첫 해는 그래도 풀과 벌레들이 초보 농사꾼을 봐준 모양이다. 더구나 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텃밭에 나가 살다시피 했다. 그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못나기는 했어도 온갖 채소며 작물이 그런대로 결실을 맺어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기쁨을 경험했다.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고추 농사도 제법 성공적이었다. 마당에 놓은 평상 가득 붉은 고추를 말리면서 이게 바로 직접 키운 태양초라고 우쭐거릴만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게 하나 있다. 애당초 농사지은 것을 내다 팔 생각은 없어 돈으로 따져보지 않았지만 그나마 돈이 될 만한 것은 고추농사뿐이라는 것이다. 고추농사를 잘 지으면 그해 김장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퇴비며 농자재 값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서 상황은 딴 판으로 흘러갔다. 온 동네의 벌레와 곤충이 우리 텃밭으로 다 몰려드는 것이다. 이곳에 오면 무공해 청정 먹거리가 있다고 누가 광고라도 한 것 같다. 잡초도 마찬가지다. 제초제를 한 방울도 뿌리지 않으니 웬 놈의 풀이 그리 성한 지 아무리 손으로 뽑아내도 뒤돌아서면 다시 풀밭이다.
고추농사도 마찬가지다. 첫 해 고추 모종 이백여 포기를 심어 우리 집 김장을 하고도 고춧가루가 남았는데 작년에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병충해까지 번져 붉은 고추는 따보지도 못하고 아예 고춧대를 모두 뽑아내고 말았다. 같은 자리에 계속 심은 연작 피해요, 욕심껏 잔뜩 심어만 놓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고추농사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일도 없다. 모종을 심기 전부터 퇴비를 충분히 넣고 배수가 잘되도록 이랑을 높게 잘 만들어야 한다. 고추 모종에 곁가지가 나기 시작하면 바로 곁순을 따주고 바닥에 끝없이 돋아나는 잡초를 일일이 뽑아주어야 한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박아 세 번 네 번 묶어 주어야 하고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면 덧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잡아주어야 한다. 고추가 붉게 물들면 일일이 손으로 따서 말리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만 시기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요 그 많은 일을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텃밭 농사에 인부를 사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고추농사를 지어 텃밭 농자재 값이라도 충당하려던 나의 욕심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금년에는 고추농사 욕심에 결단을 내렸다. 고추 모종 심는 양을 예년보다 반 토막으로 줄인 것이다. 그 정도면 벌레들이 단체로 덤비지 않을 것이고 제 때 풀도 뽑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채소며 다른 작물도 꼭 필요한 것만 조금씩 심는다. 텃밭에 채소 백화점을 차려봤자 다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이제 초보 농사꾼 티는 벗었으니 한두 가지라도 제대로 농사지어야 체면이 선다.
내가 좌우명처럼 즐겨 쓰는 말 중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내가 고추농사를 짓다 보니 나만의 좌우명이 또 하나 생겼다. ‘고추불급’이다. 고추농사에 욕심이 지나치면 안 된다는 나만의 넋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