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1)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꿈>의 화자가 2년이 지난 뒤 겪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꿈>에서 악몽이든 미래에 대한 꿈이든 꿈을 꾸고 있었다면 <모스끄바...>는 아직 남아 있던 꿈이나 미련을 버리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이뤄지는 공간은 다름 아닌 모스끄바이며 작품 끝에서 모스끄바를 떠나는 화자의 모습은 새로운 현실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화자 '나'는 영화감독인 남편을 따라 모스끄바에 온 작가이다.
남편과 스텝들이 영화촬영으로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데 화자 혼자만 일이 없다.
'남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따라온 것은 모스끄바에서 살고 있는 대학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 시사잡지의 모스끄바 통신원으로 있는 C와 유학 와 있는 B, 소설취재를 위해 온 소설가 K 등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갖고 온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화자에게 모스끄바는 단순한 외국의 도시가 아니다.
'살아서는 아마도 밟지 못할 거라고 상상했던 땅'이며 '몰래 읽은 혁명사와 레닌 전기 속에서 살아 숨 쉬던 땅'이므로 B와 C를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스뗀까라친, 스뗀까라친 노래를 부르며 모스끄바의 밤거리를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던 도시다. 곧 모스끄바는 하나의 지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는 기호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맞닥뜨리는 모스끄바의 현실은 더 이상 혁명이나 꿈의 도시가 아니다.
택시가 없고 비닐우산도 없고 호텔에 영어를 하는 종업원이 없고 전화를 걸 수도 없으며, 하룻밤 몸을 파는 인터걸들이 호텔 복도에 가득한 불편하고 타락해 가는 도시이다.
유일하게 있는 언덕에 모스끄바 대학과 모스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세워놓은 나라이지만 '패배한 나라'가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강도와 도둑이 생기고 물가가 올라 '살기가 점점 힘이 드는' 사회가 된 것이다.
소설의 소제목을 통해 (모스끄바에는 택시가 없다/ 모스끄바에는 새가 없다/ 모스끄바에는 산이 없다... 하지만 하나의 언덕이 있다/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산이나 새가 없다는 자연적 특성을, 택시, 전화, 비닐우산이 없고, 영어가 소통되지 않는 상황 등 자본주의에 익숙한 입장에서 보는 불편함들을, 인터걸이나 맥도널드의 노랗게 반짝이는 M자 등, 재빠르게 침투한 자본주의의 위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모스끄바의 변화라고 하겠는데 특히 화자에게 감지되는 모스끄바의 현실은 답답하고 외롭다는 것이다.
호텔 식당에서 차 주문을 하는 것조차 의사전달이 어려우며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의 전화를 받게 된다거나 목적지를 잘못 이해한 운전자에 의해 엉뚱한 장소에 가게 되는 등 언어가 통하지 않아 겪는 불편과 막막함이 계속 나타난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을 때 화자가 철저히 혼자라는 점은 고립감을 배가시킨다.
남편이나 스텝들이 영화일로 바쁘게 움직일 때 그녀는 혼자 호텔에 남아있다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드까나 마시거나 줄곧 담배만 피우고 있다.
<꿈>과 비교해 볼 때 그녀에게 우호적이거나 그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인물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스끄바에서 옛 친구인 C와 B를 만나는 것은 젊은 시절의 꿈을 되살려 본다는 의미 외에 낯설고 외로운 현실에서 익숙한 '예전의 것'을 찾는 행위가 된다. 곧 모스끄바가 낯설고 불편하고 이상할수록 옛 친구들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강해지는 것이다.
옛 친구들의 모습은 10년 전 함께 갔던 여행장면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1985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화자는 C와 B와 함께 광주행 밤기차를 타고 무조건 남쪽으로 떠난다. 당시 그들은 스물세 살의 젊은이들이나 생기발랄한 청춘이 아니고 지치고 겉늙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은 ‘휑뎅그렁’한 밤열차, '포장도 안된, 표지판 하나 없는’ 망월동 길, ‘시련처럼’ 이글거리던 뜨거운 태양, 아무에게도 연락되지 않는 막막함 등 황량한 이미지로 이루어져 지친 청춘을 표상하고 있다.
이들은 망월동의 초라한 묘지들을 본 뒤 아무 버스나 타고 소주를 마시다가 잠에 떨어져 버리는데, 깨어난 이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다였다.
그런데 그 바다는 '섬으로 막막히 막혀버린’ ‘바다 같지 않은 바다'로서 이들의 막막함을 더욱 강하게 부각하는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 바다에 C가 오줌을 갈기면서 '우리는 이제 인도로 간다!'라고 소리쳤던 것이 회상되는데, '인도'는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은 화자에게 1980년대적 상황과 젊은 날의 고뇌가 뒤섞인 우울한 청춘의 초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에게 80년대는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청춘이었으므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심리와 그리움이 맞물려 있다. 80년대에 대한 향수는 그 시대의 정서를 공유하는 자들 간의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지며 모스끄바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자 하는 시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옛 친구 만나기가 쉽게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화자가 직면한 현실의 냉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모스끄바에 도착해서 화자가 한 유일한 일은 C에게 전화 거는 일이었으나 그와의 통화는 계속 이뤄지지 않으며 어렵게 통화가 된 뒤 만날 장소를 정하지만 엉뚱한 장소에 감으로써 결국 만나지 못한다. 이를 통해서 그녀가 느끼는 단절감과 소외감이 부각되면서 막연한 그리움을 지니고 살 때가 아님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변화된 현실 속에서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강박감 아래, 화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변하지 않은 예전의 것을 찾았지만 실패함으로써 냉엄한 현실을 인식한다.
모스끄바에 와서 새삼 변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조금씩 감지하고 있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변하지 않은 것으로 유일하게 매달렸던 옛 친구와의 조우조차 이뤄지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을 그녀는 뼈아프게 인식하게 된다.
이 확인작업은 레닌의 묘 앞에서 다시 한번 이루어진다.
이제 레닌은 혁명사 속에서 살아있던 거인이 아니라 158cm의 단구로 지하의 묘지에 누워있는 주검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레닌의 유리관 앞에서 모스끄바의 현실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녀는 과거의 꿈에서부터 빠져나온다. 곧 죽은 레닌은 지하에 남겨둔 채 살아있는 인간들은 지하묘지를 빠져나오는데, 이는 레닌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는 죽었고 살아있는 자들은 새로운 현실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꿈>에서 악몽이든 미래에 대한 꿈이든 꿈을 갖고 있었다면, 또는 가질 수 있었다면, <모스끄바...>에서는 아직 남아있던 꿈이나 미련을 버리게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다름 아닌 꿈의 도시였던 모스끄바이며 따라서 작품 끝에서 모스끄바를 떠나는 화자의 모습은 새로운 현실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그 정서를 되살려 보고자 했던 화자는 그 시도가 실패함으로써 그에 대한 향수를 청산하며 서울에 돌이 지난 아이가 있다는 자신의 실제 현실에 비로소 시선을 돌린다. 그리하여 그녀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돌아갈 현실이 즐거운 것이라거나 그 출발이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정해진 순서에 따른 피동적인 내딛음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