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소설 (4)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2)

by 한혜경

1995년 모스끄바 - 꿈을 버리게 하는 현실


새로운 글쓰기의 모색


<모스끄바...>에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애먹는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호텔 커피숍에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웨이트리스 때문에 화자는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며, 자동차 운전자가 행선지를 잘못 알아들어 이상한 곳에 가기도 한다. C인 줄 알고 달려가 받은 전화기 저편에서 처음 듣는 언어들이 쏟아져 나와 당황하기도 하며, 청소부에게 영어로 물어봐 달라는 스텝의 부탁에 영어가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와 불편은 더 나아가 타인과의 유대를 막는 요인이 된다.


아들의 유학생활을 살펴보러 왔다가 아들이 연상의 러시아여자와 살고 있음을 본 안의 부모는 며느리에게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라는 말만 하고는 침묵하다가 돌아간다. 언어의 이질성이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같은 말이라고 해도 말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듣는 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이쁜아... 이쁜아 이리 오렴! 노작가는 고양이들에 소리쳤지만 고양이들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얼핏 멀리서 내 눈이 그중의 한 고양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 적의가 없단다. 이리 와서 선생님이 주시는 저녁을 먹으렴, 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게는 그들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내가 설사, 이쁜아, 이리 오렴, 하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노작가가 부르는 그 이름과는 다른 것일 테니까.




들고양이들이 늘 밥을 주었던 노작가의 말과 낯선 자의 말을 구별하듯이, 언어의 소통에는 먼저 언어가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에 덧붙여 진정한 정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현상은 단순한 오해로 인한 답답함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관계에서 소외됨을 의미한다. 박물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화자는 그의 고통을 소통의 차원에서 해석해 본다. 고흐가 괴로워했던 것이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서 부딪치는 언어소통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나 상상하는 것이다.



어학원에 다니지도 않았고, 개인 레슨을 받지도 않았을 가난한 화가... 더구나 아를르는 남프랑스의 시골이고 사투리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고흐는 그래서 그토록 동생 테오에게 열심히 편지를 쓴 것이 아닐까. 푸르스름하다거나 어둑어둑하다거나 얼핏, 문득, 새록새록... 이런 네덜란드 말이 하고 싶어서…(중략)... 고흐가 만일 프랑스말을 유창하게 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 이 들었다.




이 상상은 '타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언어가 사람을 죽게까지 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정에 이르는데, 이러한 삽화들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소통이며 같은 언어를 쓰는 자들끼리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의 중요성이 암시된다. 버스에서 늘 듣곤 하던 코미디 방송처럼 지겨운 것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언어소통의 문제는 글쓰기의 소통양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이 작품에서 그 연관에 대한 깊은 천착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이 작품의 화자는 80년대 식이 아닌 새로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으로만 드러난다.

어떤 점에서 새로운 글인가 하는 방향은 나타나지 않고 단지 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자들은 내게 충고했다. 이제 좀 다른 이야기들을 쓰시지요.… 한 평론가는 진지한 얼굴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옳다 해도 낡은 것은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택하시지요, 말했다. 그러지요, 옳더라도 낡은 것을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 아니요, 옳지 않은 것, 이 아니라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는 말을 수정했다. 맘에 든다구요? 이게 맘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였던가요?


화자는 이제 '소리 지르지 않고 소곤소곤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화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한다.


'옳든 아니든,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새롭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로 빠질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드러나진 않지만 화자가 글쓰기에서 지양하고자 하는 것은 남편과의 다툼에서 암시된다.


곧 남편이 찍고 있는 영화 같은 작품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러시아에서 알게 된 유학생들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후에 남편이 죽게 되자 6년 후 남편과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러시아에 온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화자는 '사람들을 속여먹지 말라구' 하면서 '노력하고 노력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어느덧 행복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듯한 거짓말을 그만’ 하라고 외친다. 이는 사랑이 주제가 되는 것에 대한 반감과 사랑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결말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사랑이야기나 노력하면 행복을 얻는다는 이야기와는 다를 것인데 구체적인 언급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사랑이야기나 1980년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고 쓸 것은 생각나지 않아 쓰지 못하고 있음이 현재 화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차가운 지적처럼 ‘사람들을 속이지도 않고 그렇게 현실적인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끄바를 떠나면서 그녀는 먼저 C에게 전화를 걸고 아무도 받지 않자 '모스끄바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서울에 전화를 한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는 모스끄바에 더 이상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음을 재확인시키는 것이다.

사라진 것을 되돌리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접고, 그녀는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돌아본다. 막 돌이 지난 아이와의 통화는 그녀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지난 시간에 대한 꿈은 의미 없으며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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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의 통화는 또 하나의 소통양상을 보여준다.

이 경우는 제대로 의미전달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지는' 소통으로서 의사전달보다 더 강한 감정 소통의 예라고 하겠다.


같은 말이라도 전달자에 따라 수신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와는 반대로, 말에 의해서는 전달이 되지 않더라도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진정한 소통양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글쓰기에 이러한 소통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의 일상 언어생활에 대한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모스끄바를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것은 꿈을 꾸리라 기대했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익숙한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언어소통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모스끄바에서와는 달리 서울에서는 그리웠던 모국어를 늘 사용할 것이고 버스를 타면 코미디언들이 수다를 떠는 방송을 듣게 될 것이다. 그전에 의미 없다고 생각하던 일상들, 익숙해서 지겹기도 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인데 이러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온몸을 다해 달려가다가 마침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는 비행기의 이륙현상에 대해 '우주를 지배하는 중력과의 싸움'이라고 느끼는 모습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삶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이 열정이 과장되지 않은 현실인식과 만날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작품으로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공지영 소설의 지향점


<꿈>과 <모스끄바..> 두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현실인식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꿈>은 이념이 힘을 잃고 대신 자본의 힘이 강해지는 현실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고뇌하는 예술가들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상업적 가치보다는 예술성을 옹호하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는 자들과 1980년대적 가치, 곧 역사 사회적 맥락의 '아름다운' 삶과 진정한 삶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자들로 나타난다.

작가인 화자는 변화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이고 따라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는 데는 글보다 삶이 앞서는 선배 시인의 존재가 작용한다.

곧 글을 쓰지 못하는 원인으로 글이 문제가 아니라 삶이 엉망이었기 때문임을 깨달으며 그녀는 삶과 글이 일치되는 지점을 향하여 힘들더라도 '진짜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모스끄바...>에서는 새로운 다짐이 나타나지 않는다.


<꿈>에서19 80년대는 ‘우리’끼리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케 하는 요소지만, <모스끄바...>에서 1980년대는 그리움과 회피하고 싶은 심리가 뒤섞인 대상이다.


1980년대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시절이었으면서 청춘의 시간이기도 했으므로 그에 대한 화자의 태도에는 힘을 잃은 이념과 청춘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되돌아가고 싶으면서 동시에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다.


그 시절에 대한 유대감을 되살리고자 했던 그녀는 모스끄바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19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자들에게 꿈의 도시였던 모스끄바는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더 이상 꿈의 도시가 아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소통이 어렵고 불편하고 타락해 가는, '아무도 없는’ 도시로 변한 것이다.

이곳에서 옛 친구를 만남으로써 예전의 꿈을 되살리고자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음은 1980년대와 무관해진 현실을 보여준다. <꿈>에서처럼 사랑이나 행복, 희망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나 지금이 혼돈의 때라고 느끼는 자는 더 이상 없으며 하룻밤 인터걸을 사는 것에나 관심을 보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화자는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는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즉 <모스끄바...>에서는 감상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지탱시켜 왔던 일종의 원동력 같은 꿈이 버려지고 '아무도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이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길을 모색할 것인가가 그녀에게 숙제로 남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지영의 소설은 부끄럽지 않은 삶과 글을 지향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역사 사회적 관심과 '아름다움'을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시도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로 역사 사회적 이야기가 아름다움 쪽에 묻힘으로써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가 되거나 역사 사회적 주제를 감상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을 보게 된다.

힘들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에 대해서 근본적인 원인 파악이나 해결책에 관심이 있기보다 그들의 삶이 아름다우며 그들에게 동조하고 싶다는 동지애 같은 감정적 차원에서 끝나고 있다. 심정적 다짐이나 각오로 끝나는 감상적 결말은 진정한 방향제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모스끄바에 아무도 없다는 인식은 이러한 감상이나 동지애가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녀가 꿈과 함께 감상을 버림은 한편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보다 치열한 현실의식으로 대치된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게도 만든다. 진정한 삶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현실의 맥락을 보다 깊이 있게 읽어내는 데 일조할 때 바람직한 작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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