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니어호는 3년간 20억 km를 날아가 에로스라는 소행성을 만난다
산업화로 인해 믿음과 정이 사라져 가는 현대사회의 삭막함은 1978년 이청준에 의해 '잔인한 도시'로 명명된 바 있다. 냉혹한 거래와 거짓 자유가 횡행하던 이 도시는 20여 년 후 하성란의 소설에서 화려해진 외양 이면에 비정함과 욕망을 숨긴 모습으로 등장한다.
1996년 첫 소설집인 <<루빈의 술잔>>과 1999년의 <<옆집여자>>에서 작가는 커다란 통유리로 이루어진 고급 자동차 전시장, 현란한 광고판, 햇빛에 빛나는 유리 건물, 밤이면 현란한 불빛으로 번쩍거리는 쇼윈도들을 통해 고도성장으로 빚어진 우리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하성란 <<루빈의 술잔>>
그런데 이들 화려함 뒤에는 토사물로 얼룩진 골목길, 춥고 어두운 응달, 통증과 폭력 등이 숨어있다. 광고판에는 금발 미녀가 유혹적 포즈로 그려져 있지만, 그 뒤는 "각목들이 양 철판에 가로세로로 어지럽게 붙어있고 녹슨 대못들이 툭툭 불거져 있고 '원산폭격'과 '구타'가 행해지는 음산한 곳이다. 쇼윈도에 진열된 화사한 봄옷에는 그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시침핀에 찔려가며 옷을 입어보는 피팅모델의 아픔이 숨어있으며, 위풍당당한 고층빌딩은 그림자로 인해 체감온도가 훨씬 낮은 음지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도시를 배경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자들이 하성란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성실하지만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 실용적인 일이나 실적 올리는 데 관심 없고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 남편은 은행원입니다. 일 원짜리 하나도 실수 없이 계산해야 하는 은행원들에게 내 말이 통할 리 없었습니다. 세탁기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간 내 머릿속을 의심받았을 거예요. 남편 말에 의하면 내 머릿속은 공상으로 가득 차 있대요. 그래서 늘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다는 겁니다. 남편은 유령 같은 내게 불만이 많아요."
<옆집 여자> 중에서
남편과 마찬가지로 은행원이었지만 '뛰어난 은행원'은 아니었던 주인공은 "무조건" 사람을 잘 믿고 “음악을 듣고서 우유 생산이 곱절로 늘었다는 젖소 이야기나 거대한 숲의 바닥에 사는 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집안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기도 하는 그녀는 실리적인 남편으로부터 "한심하다"는 핀잔을 듣고 '정신 나간 사람'으로까지 취급당한다.
실용적 가치를 옹호하는 자들로부터 밀려나는 이들이 힘겨워하는 것은 물질적 궁핍이 아니라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이다. 만원 버스의 난폭한 운전, 중량 초과를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녹음된 목소리, 마네킹으로 착각해 디자이너들이 찌르는 시침핀, 피서지에서 익사 사고를 목격하고도 "먹을 건 먹어야지." 하는 무심함, 실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태도,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닌 진열된 자동차 위주로 꾸며진 사무실, 사장의 '하얀 와이셔츠와 구김 없는 양복' 등, 완벽하지만 차갑고 비정한 상황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들은 출세욕뿐 아니라 식욕이나 소비 욕구와 같은 욕망에서도 자유롭다. 얼핏 보헤미안의 삶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우리 소설의 새로운 인물 유형이라 할 만하다.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되 무욕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며, 이른바 주류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이나 불안을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으로 먹기 때문에 자꾸 살이 빠지며 더 나아가 기억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머리와 몸 안에 무언가를 채우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욕망으로 가득한 이 시대, 수많은 물건들로 넘쳐나는데도 더 채우고자 혈안이 된 이 시대에 묵묵히 저항하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욕망 없고 소비하지 않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강력한 이단아라고 할 수 있겠다.
적절한 욕망이란 활기찬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지만 지나친 욕망은 화를 부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이, 욕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불안이 현대인의 문제라고 할 때, 이들은 욕망이 없으므로 불안하지 않다.
단지 외로울 뿐이다. 이 외로움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정신적 쌍둥이가 부재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이들이 꿈꾸는 것은 '이야기할 상대'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나고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이다.
<지구와 가까운 소행성과의 랑데부>의 여자는 외로운 심경을 나뭇잎에 써서 날려 보낸다. 121개의 나뭇잎을 날려도 응답이 없어 포기하려는 순간, 건너편 건물의 남자를 본다.
곧 우주선 니어호가 3년간 20억 Km를 날아가 에로스라는 소행성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소통을 향한 희망이 꽃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