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에 나타나는 소통의 양상

by 한혜경

레이먼드 카버(1938-1988)는 미국 단편소설의 중흥기를 이끌어낸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이다.


1980년대에 레이먼드 카버만큼 유명했던 미국 단편 작가는 몇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정도로 카버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부계와 모계 모두 1700년대 후반에 북미대륙으로 건너온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인 이민의 후예로 카버의 아버지는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칸소 주와 워싱턴 주 사이를 옮겨 다니다가 오리건 주의 와우나에 와서 레이먼드를 낳았다.


어린 시절 카버는 친구들과 친척들로 이루어진 너그럽고 의지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자라지만, 10대에 들어서면서 뚱뚱해지고 외로움을 느끼며 학교에선 부적응아로 지내게 된다.


파머 작가학교에서 주관하는 통신과정에 등록해 소설 쓰기를 배우고 있을 때 메리앤을 만나 19세 때 결혼한다. 두 사람은 레이먼드가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결정, 이후 아내의 재촉으로 카버는 야키마 초급대학에 두 강좌를 신청하고 독서클럽에 가입하는 등, 꾸준히 소설수업을 수강한다.


22세인 1960년, 문예지에 첫 단편소설 「분노의 계절」이 실리고 이후 29세에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1967년도 <전미 최우수 단편소설>에 수록되는 등, 작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는데, 한편으로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한다.


가난과 알코올중독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던 레이먼드 카버에게 작품의 성공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의 작품들이 판매부수가 많은 잡지에 실리고 여러 계간지에서 청탁이 들어오자 그는 “세상에, 내 잔이 넘치고, 또 넘치고, 또 넘치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대성당>은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얻기도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본인도 그렇게 죽어가는 과정을 겪었으며 그런 자신을 비웃던 딸 역시 같은 과정을 겪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다가 5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카버의 평전을 쓴 캐럴 스클레니카는 그의 문학이 이 고통의 순환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그 연원을 들여다보는 일이었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었고 무엇보다 오래전에 사라진 아버지의 ‘월급시절’을 회복하려는 안간힘이었고 마침내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내고 그 견뎌냄 자체가 자신의 성취였다는 것을 깨달은 자가 내놓은 인생에 대한 송가였다고 설명한다.




<대성당>에 나타난 소통의 양상


<대성당>은 1982년 전미 최우수 단편소설로 선정된 작품으로 레이먼드 카버에게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당시 카버의 동반자였던 테스 갤러거가 대학원 시절 함께 일했던 시각장애인 제리 캐리보가 그들을 찾아온 일에서 비롯되었는데, 시라큐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차에서 쓰기 시작해 뉴욕에 도착해서 한 주 정도 후 초고를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테스는 캐리보를 위해 글을 읽어주기도 하고 타자를 쳐주기도 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어느 날 굴곡이 있는 종이에 여러 가지 지문 유형의 외곽선을 그린 후 캐리보가 만져볼 수 있도록 그의 손을 잡아 이끌면서 설명을 해준 적이 있었다.

실제로 시인인 테스는 이 경험과 관련해 지문을 채취하는 일과 눈멂의 은유를 사용한 연작시를 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캐리보가 그들을 방문했을 때 카버가 느낀 불편함과 놀라움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작품 속의 대화나 행위, 결말 등은 완전한 창작이다.

카버 스스로 이 작품이 그때까지 썼던 작품들과 “개념적으로나 작법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라고 하며 자신에게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친구인 시각장애인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화자의 마음이 어떻게 열리는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융화되는가를 따뜻하게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관계, 그리고 그들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어 가는지 살펴본다.



교감 없는 관계의 외로움


<대성당>에 등장하는 화자는 다소 미숙한 인물이다.

선입견이 강한 데다 아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디고 음식과 술, 대마초에 관해서는 엄청난 식욕을 자랑한다.


부부의 이야기지만 결혼생활의 문제가 주요 관심이 아니라는 점에서 카버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다.

선입견으로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자신에게 편안한 범주와 소통방식을 기꺼이 넘어서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화자 ‘나’는 아내의 오랜 친구인 시각장애인 로버트의 방문을 앞두고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있다.

아내에게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로서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으며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그의 생각은 순전히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천천히 움직이고 절대로 웃지 않’고 ‘맹인 안내견을 따라가기도’ 하는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다.


단순하고 지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화자에 비해 아내는 ‘항상 시를 쓰려고’ 하는 인물이다.

일 년에 한두 편의 시를 쓰는데, 대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일어난 뒤에 하는 일’이다.


로버트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날 그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본 일에 관해서도 시를 썼는데, ‘나’는 그 시를 ‘변변찮은 시’라고 생각한다.

‘시집을 펼치는 일이 거의 없’는 그로서는 시나 시를 쓰는 아내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아내와 깊이 있는 교감을 하기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로버트는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다.

10년 전 책 읽어주는 일을 하면서 시작된 그와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아니라 좋은 친구로 발전한다.


일을 그만두고 결혼해(화자는 두 번째 남편이다) 다른 지역으로 간 뒤에도 아내는 로버트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 여러 기지로 전근함에 따라 아는 사람들과 연락이 끊어지고 외로워진 그녀는 약까지 먹게 되는데,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로버트이다.

곧 로버트에게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들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보내는 일에 열중하며 외로움을 견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당시 남편과 이혼하고 얼마 있다가 ‘나’를 만나 사귀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른다.


외로움에 지치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아내나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고 ‘친구도 없’는 ‘나’에 비해 로버트는 여유롭고 관대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의 외모는 ‘건장한 체격에 머리는 벗어지고 등에 짐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구부정’하고 턱수염이 덥수룩하다.


처음 만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는 태도가 없다.

자신의 가방을 직접 가지고 가겠다고 하며 화자의 실수에도 너그럽게 대한다.

화자의 아내와 대화하다가도 ‘이따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손으로 턱수염을 매만지며’ 묻기도 하면서 ‘나’에게도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대마를 피우겠냐는 엉뚱한 제안에도 거절하지 않고 함께 함으로써 늘 홀로 잠들곤 하던 화자로부터 “같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란 인사가 나오게 한다.

10년 전 아내의 외로움을 견디게 했던 로버트는 이제 ‘나’의 소외감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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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의 관계


아내와 ‘나’의 관계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로버트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화자는 당혹스러워하는데, 아내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이기보다 화자의 무심함을 탓하며 “날 사랑한다면” “내 생각을 해서 좀 참아줘”라고 부탁한다.


‘나’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맹인이라고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고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말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로서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아내는 일을 그만두는 날 로버트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본 것을 ‘절대 잊지 못’할 경험으로 여기고 시를 쓰기까지 했지만 화자는 공감하지 못한다.

시각장애인이라곤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이므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아내 역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힘들고 외로울 때 도움을 준 로버트의 방문이 중요하므로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남편이 실수할 것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걸 바라보는 눈길’이며 ‘짜증스럽게’ 바라보거나 ‘성난 표정’을 짓곤 한다.

이에 비해 로버트를 향해서는 ‘미소 짓고’ ‘웃음을 터뜨리는’ 등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사실 화자는 매일 밤 마약을 피운 뒤 가능한 한 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잠들기 때문에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든 적이 거의 없다.

잠자리에 들면 여러 꿈을 꾸고 그런 꿈을 꾸다가 깨어날 때면 ‘마음이 미칠 것만 같’지만, 이러한 상태를 아내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그에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다른 친구도 없잖아.”라고 못 박듯이 강조하는데, 이에서도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전무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로버트가 방문한 후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면서 ‘그들에게!’(! 를 붙일 정도로 나의 소외감은 강하다) 일어난 일만을 얘기할 뿐, ‘나’는 배제된다.

그들의 이야기 도중 “아내의 달콤한 입술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는다.


긍정적 배려의 힘


이러한 그의 소외감은 로버트에 의해 해소된다.

로버트는 그동안 그가 소외된 것을 헤아려 “자네와 좀 더 함께 있고 싶어” “우리는 서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어”라며 함께 있기를 원한다.


로버트는 매사에 긍정적이며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로 인한 콤플렉스가 없고 배려심이 많다.

화자가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자 아내는 짜증 내지만 로버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대마초를 권해도 놀라지 않고 피워보겠다고 한다.


로버트의 말은 “뭘 보든지 상관없어”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우는 일은 끝이 없어.” “아직 괜찮네” “지금도 편안해” “다 괜찮네” “난 아주 좋아” “이런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지만 할 수 있다는 등, 매우 긍정적이며 낙관적이다.


화자의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격려하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내와 얘기를 하다가도 고개를 화자 쪽으로 돌리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 등 타인에 대한 배려 역시 크다.


결국 화자와 로버트는 그림을 함께 그리면서 완전한 일치감에 도달하게 된다.

로버트에게 대성당의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로버트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곧 화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처음에 화자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로버트는 “멋지군” “끝내줘” 하며 격려한다.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겠지만’ 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삶이란 신비롭다”는 로버트의 말은 각각에게 익숙한 범주와 소통방식을 뛰어넘는 감동을 자아낸다.


마지막에 로버트는 화자에게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권한다.

화자의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는데, 살아오는 동안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라고 느낄 정도로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서 화자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시각 장애를 가진 자가 육체적 장애는 없으나 정신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화자를 대화에 끌어들이고 함께 그림을 그린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에 이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일을 하리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하게 된 일, 하게 될 일...

그러기에 삶이란 신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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