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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Jun 10. 2024

후회 없는 삶에 바치는 푸른 송가(頌歌)

 - 노상비 <푸른 슬픔>을 읽고

 

 한 여성이 있었다. 

교내 시위가 거듭되던 대학 시절, 아무도 앞장서지 않는데 ‘작은 배’를 노래하며 대열의 앞에 섰던 강희. 

그런데 수감된 남자친구가 사형을 선고받자 고통으로 몸이 허물어진다. 


한껏 푸르러야 할 청춘이 위가 아파 밥을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다. 

훗날 새로운 사랑을 선택해 결혼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일생 죄인처럼 숨소리도 안 내고 살았다.” 

모든 무대에서 사라진 채 살아간 나날은 그녀의 위를 더욱 학대했으리라. 결국 위암으로 이 세상을 떴다. 


노상비의 <푸른 슬픔>은 강희의 죽음을 뒤늦게 안 벗의 애절한 별사(別辭)이다. 

생의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온 벗으로서 강희의 삶을 복기하는 이 글은 격하게 끓어오르는 붉은 울음이 아니라 수면 깊이 가라앉아 슬픔과 아픔을 아로새긴 ‘푸른’ 빛으로 채색되어,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강희의 사랑은 “보기만 해도 눈에 통증이 왔”을 정도였으므로, 그녀의 결혼 청첩장을 받고 작가는 “잘했어.”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이후 삶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마산 앞바다에 뿌렸어요.” 

마산 앞바다는 강희의 고향이면서 최종 정착지가 되었다. 

이곳에 와서 작가는 강희를 회상하면서 그리움과 슬픔을 모두 바다에 던진다. “네 위는 괜찮니?” 한 번쯤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미안함도. 





그 순간 들리는 소리, 


“후회 없어.” 


이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온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부조리한 시대의 회오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느라 ‘잘 웃던 모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고, “사랑을 지키느라” 죄인처럼 살았던 친구의 생이 존엄한 삶이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후회 없으면 됐어.” 


작가의 답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그러자 편안함이 찾아온다. 

친구가 그리우면서도 두렵기도 하여 “수없이 뒤척이다가” 찾아간 바다에서 작가는 마침내 평안에 도달한다. 


이로써 이 글은 별사를 넘어, 신의와 사랑을 지키는 난제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에 바치는 송가(頌歌)로 완성된다. 

아울러 작가가 치르는 치유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이제 푸른빛은 슬픔을 뒤로하고 평온과 희망으로 나아간다. 

바다는 고통과 그리움, 미안함을 흘려보내고 사랑과 평화로 출렁이고 있다.                



*** 데일리한국 2024.6.10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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