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백윤 <아내의 바다>를 읽고
화려한 수사와 멋진 표현이 풍성한 글을 읽다가 떠오른 질문이다. 잘 쓴 글인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문득 이성복 시인의 일갈이 생각났다.
“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 치는 걸 독자는 제일 싫어해요.” (<불화하는 말들>)
김백윤의 <아내의 바다>를 읽으며 이 질문을 다시 곱씹어본다.
이 글은 바다의 장엄한 풍광을 묘사한 여타 글과 달리, 꾸밈없이 수수한 문장으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서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거친 노동의 현장이다. 해녀인 아내가 “목숨을 담보로” 물속에 들어가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아내’가 일하는 작업장이다.
우뭇가사리는 일일이 손으로 뜯어야 하므로, 뭍에서 산들바람 맞으며 뜯는 나물과 다르다.
“뭍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쉬엄쉬엄 먼 곳에 눈을 주기도 하지만 바다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망사리를 가득 채우기까지 숨을 참고 바다를 누벼야 하며, 몇 초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이러한 해녀의 삶에는 ‘은유’가 끼어들 틈이 없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진 물질을 거부하지 못하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꾀를 부리거나 회피할 수도 없는, ‘직설적’ 삶이다.
해녀들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동안 남자들은 기다린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편안한 것은 아니다. 손에 땀이 나도록 초조하고 ‘가슴을 죄는 시간’이 흐른다.
이윽고 망사리를 가득 채운 해녀가 바다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남자들도 바빠진다.
무거운 망사리를 차례차례 뭍으로 옮겨 말려야 한다. 뭍으로 올라온 해녀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인데도 해초가 널린 곳으로 달려가 말리는 작업을 한다.
아내의 팔은 거칠고 몸에는 ‘바다의 무늬’가 새겨졌다.
숨 가쁜 삶의 속살 그 자체이다.
아내가 바다를 누비는 긴 시간, 아내의 두려움과 가쁜 숨을 헤아리는 남편은 바다를 풍경으로 소비할 수 없다. 노란 테왁이 해바라기처럼 피어난 꽃밭 같은 바다에 감탄하는 관찰자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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