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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Sep 21. 2024

거울 앞에서(1)

- 시에 나타난 거울 이미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가 물으면 대답을 하는 거울. 동화 속 세계를 상상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 이 말하는 거울 덕분에 거울의 실용적 기능보다 신비한 측면이 내 마음에 먼저 아로새겨졌다. 


 우리 집엔 그런 거울이 없으려나 살펴보았더니, 엄마 화장대 위에 놓인 손잡이 달리고 둘레에 예쁜 장식이 달린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는 세상에 마법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화장대 서랍 속 엄마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리며 놀 때마다 한 번씩 그 거울에 눈길을 주곤 했다. 


그러다가 거울의 침묵이 아쉽지 않을 나이가 되면서 거울은 본래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말하는 거울은 의식 저 아래에 가라앉히고. 


시간은 더 흘러서 거울을 자주 봐야 예뻐진다는 말을 신봉하며 수시로 거울 속 모습을 체크하던 사춘기와 젊은 날을 지나, 6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가 되니 거울 앞에 서면 저절로 내면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주름이 늘고 탄력을 잃어가는 외모야 세월을 거스를 수 없지만, 내면만큼은 추하지 않게 다스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의 속성에 대해 많은 시인들이 주목했으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대표적이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시인은 젊은 날을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때로 묘사하면서,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어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을 거울 앞에 선 ‘누님’으로 형상화한다. 젊음은 ‘머언 먼’ 과거가 된 시점에 이르러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유독 예민했던 시인의 거울도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서시>) 소망했던 윤동주.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미움과 연민이 교차하는 심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자화상> 중에서        


 그리고 욕된 모습을 지우기 위해 거울을 닦으며 참회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 // (중략) 

  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참회록> 중에서  



밤마다 거울을 닦으며 부끄러운 자신을 참회하는 시인의 슬픔이 지금까지도 마음을 울린다. 

너무 염결하고 순수하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용납할 수 없었던 시인의 영혼은 <별 헤는 밤>에서 ‘밤을 새워 우는 벌레’에 자신을 이입하기도 한다. 밤새워 우는 까닭은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부끄러운 이름이 ‘자랑’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별 헤는 밤> 중에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부끄러움과 죽음으로 상징되는 엄혹한 현실이 가면 ‘파란 잔디’가 피어나는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날이 오면 부끄러움은 ‘자랑’으로 변할 것이라는 소망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 <그린에세이> 2024. 9,1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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