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십 대와 이십 대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엄청난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시기다. 서로 눈만 맞으면 친구가 되고, 선후배가 될 수 있었던 그 시절.
이십 대 때의 나는 외향형 E의 소유자로서 늘 친구들과 선배들에 둘러싸여 하교와 즉시 무리를 몰고 다니며 노는 데에만 여념이 없던 아가씨였다.
특히 친구들과 대여섯 명씩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었는데 덕분에 사귀던 남자친구들이 몹시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데이트할 때마다 눈치 없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들을 몰고 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분들께 몹시 미안하긴 하다.
그렇게 지금이 아니면 놀 수 없다는 각오라도 한 듯, 대학 입학 후에는 하루도 그냥 집으로 들어간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아 몇 번 있긴 있다. 몹시 아파서 고열에 시달리던 날.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이십 대는 판타스틱 했고, 매일이 즐거웠다. 연이은 미팅에 소개팅. 각종 동아리 소모임들. 하다못해 각 학교 축제들까지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며, 그 존재감을 뿜어대고 한 자리씩 해대기 바빴다. 뭐, 솔직히 지금까지도 친구들과의 모든 모임은 내가 다 리드하는 편이긴 하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매일을 누군가와 함께했고,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던 그 시절. 어쨌든 결혼 전, 십여 년 동안은 쭉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그 이상의 성장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혼자임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일지도. 혼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고, 도서관에서 홀로 사색하는 사람들을 보면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 그렇게 홀로 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성장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니, 인정하기는 싫지만, 맞는 것 같다.
사람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비로소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성장은 그럴 때야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그 시간에 독서를 하고 내공을 많이 쌓아두었다면 조금 더 내 꿈에 빨리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이십 대들에게 절대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신나게 어울렸던 친구들 중에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러하듯 여자들은 특히 결혼식을 기점으로 인맥이 한번 정리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절인연들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결국, 나는 그러한 시절인연을 위해서 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 셈이 된다.
물론 추억은 즐거웠으나 결국 그게 전부인 것 같다. 나를 위한 성장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후회되는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도 홀로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사색하고 공부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각 분야의 전문직으로 멋지게 활동하고 있다.
어느 곳에 가서든지 당당하게 전문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그 친구들을 보면, 그 시절에 쓸쓸해 보인다고 걱정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진심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인간의 뇌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늘 무언가에 쫓기며 과도한 양의 정보가 들어오게 되면 감히 사색이라는 단어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올바른 통찰력과 직관력을 갖기 힘들어지고, 매사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가 않다.
혼자임이 두렵지 않았던 그 친구들은, 인고의 시간들을 일찌감치 겪어낼 수 있었으니, 내적으로도 더 단단히 영글어 그 성장이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는 일들도 물론,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십 년 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지를 떠올려 본다면, 지금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맞다.
그렇게 이십 대 때는 시절인연들에 너무 집착하며 내 성장의 시간들을 가로막지 말자.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 시기에 부디 멋지게 날개를 활짝 펴고, 조금 더 높이 비상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K의 미래는 당신들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