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20여 년 전에 내가 나에게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었다.
직장에서 해외 연수로 로마를 방문했을 때,
“I will come back to Rome with my wife.” (아내와 함께 로마에 다시 올 것이다.)
외치며 트레비 분수를 등지고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졌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에게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를 꼭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에게 약속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20년이 지나도록 그때 나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기에 생활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직장에 십여 일 휴가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원하지 않은 퇴직으로 실업자 신세가 되었지만, 그로 인해 시간의 자유를 얻게 되어 나와의 약속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오래전에 아내를 위해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온 힘을 다해 건실하게 만들어 놓은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억울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넓은 세상 밖으로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망설이는 아내에게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고 편치 않은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고 설득했다.
예전에 직장 연수로 갔었던 유럽 일정을 되새겨 여행상품을 살펴보았다.
유명 박물관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을 여행지로 계획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경비가 저렴한 여행상품을 고르다가 직항이 아니라 국내 항공사보다 비용이 더 저렴한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행으로 집을 비워도 걱정이 덜 되는 나이가 된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행을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하고 짐을 부치며 혹시나 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런던으로 환승하는 항공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출국장에서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니 아내가 집에서 모자를 챙기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마침 비행기 탑승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면세점에 들러 선심 쓰듯이 아내가 맘에 들어하는 모자를 사주면서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애썼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 안으로 들어서니 여행 비수기인데도 불구하고 좌석이 만석이었다.
오랜 시간을 앉아서 가야 하기에 챙겨간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이른 아침부터 여행 준비로 설쳐대서 피곤했던지 금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는지 기내에 불이 켜지고 어수선해지더니 승무원들이 집게를 들고 뜨거운 물수건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잠이 덜 깨어서 실눈을 뜨고 승무원이 주는 물수건을 받으니 치킨 샐러드와 비빔밥 중에서 기내식을 고르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각각 다르게 선택해서 함께 나누어 먹기로 했다.
우리는 하늘을 날면서 좌석 앞에 붙은 좁은 테이블에 식탁을 차리고 마치 소꿉장난하듯이 비빔밥과 치킨 샐러드를 먹었다.
천하일품은 아니더라도 하늘에서의 식사는 꿀맛같이 달콤하고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 시간 지루하고 불편한 좌석에서 몇 편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기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저렴한 항공료 때문에 런던 직항이 아닌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하는 항공을 선택했지만 싼값을 치른 대신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야 해서 꽤 넓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한참을 걸어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공항 청사를 이동하면서 복도에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여행 가방을 보고 이상해서 가이드에 물었더니
우리처럼 항공기를 환승하면서 주인을 잃어버린 가방들이라고 했다.
은근히 우리 여행 가방은 괜찮을까 걱정하며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작았고 승객 대부분이 한국에서 런던으로 가는 환승객이었다.
특이했던 것은 한국에서 출발한 루프트한자 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은 젊어 보였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갈아탄 루프트한자 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모습이었다.
독일의 문화가 우리나라와 달라서 나이와 상관없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지레짐작하면서도 부러운 생각과 함께 젊은이들보다는 많은 경험이 배어 있는 그녀들의 노련미를 느낄 수 있었다.
런던 히드로우 공항에 도착하고 호텔로 이동하니 새벽 1시가 되어 가고 있었고 어두움에 쌓여 어딘지도 모르는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여행 첫날의 일정이 지나갔다.
긴장이 더해져서 그랬는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아침을 맞았고 런던 시내 관광으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런던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익히 들었던 우중충한 런던 날씨를 거짓 없이 느끼며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인 하이드 파크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동상을 보고는 버스에 올라타 여왕이 산다는 버킹검 궁으로 향했다.
여왕이 궁에 머무르면 로열 스탠더드 깃발이 펄럭인다고 들었는데 영국 국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니 여왕은
이곳에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여왕을 만날 일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궁전 앞 광장에 황금 천사가 조각된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비도 피할 겸 대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 3대 박물관을 둘러보는 유럽여행 일정에서 처음 만나는 대영박물관은 인류문화의 보고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영국이 해양대국으로 많은 식민지를 지배할 때 그 나라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로 채워져 있다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단체여행의 특성상 여유 있게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시리아 유적 전시관에서 인간의 얼굴에 황소의 몸을 가지고 등에는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는 라마수 석상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스 산토스섬을 통치하던 지배자의 무덤을 재건해 놓은 네레이트 제전에 잠시 멈추었다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 스톤과 이집트 람세스 2세 석상을 둘러보고는 빅벤을 보려고 국회의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비가 그치어 국회의사당의 시계탑인 빅벤을 잠시 바라보고 런던을 동서로 나누어 흘러가는 테임즈강으로 향하여 유람선을 타고 강변을 따라 런던의 문화를 만끽했다.
그날 아내와 나는 어찌나 발품 팔며 런던 시내를 돌아다녔던지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와서 피곤에 쩔어서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오전에 런던 시내 관광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가기 위해 해저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를 탈 수 있는 세인트판크라스역으로 갔다.
프랑스로 가는 출국절차에 따른 보안 검색과 까다로운 출국 심사를 받으면서도 바다 밑을 지나는 유로스타를 탄다는 흥분을 안고 해저터널로 들어섰다.
그러나 해저터널을 지나는 동안에 기대와는 달리 유로스타 열차의 창밖은 깜깜할 뿐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움을 안고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을 오르는 것으로 관광이 시작되었다.
에펠탑에 올라서니 파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센 강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었다.
에펠탑에서 내려와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로 이동하여 아내와 노상 커피숍에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다니는 파리지엥들을 보면서 파리의 패션을 눈앞에서 느껴 보았다.
발걸음을 돌려서 웅장한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보고 파리에 맛집을 찾아 유명한 달팽이 요리를 먹으러 이동했다.
에스카르고라고 하는 달팽이 요리와 빵을 올리브유에 찍어서 와인과 곁들여 먹으니 제법 맛이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서 이번 여행의 주요 일정인 세계 3대 박물관 관람의 두 번째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사랑의 여신상인 밀로의 비너스와 날개 달린 모양의 승리의 여신상인 사모트레카의 니케를 보고 있으니 옆에선 가이드가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이름과 로고가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말해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품 모나리자 앞에는 관람객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아내와 나는 먼발치에서 눈썹은 없지만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를 감상하고 시간에 쫓기어 듬성듬성 박물관을 둘러보고는 센 강 유람선을 타러 발길을 재촉했다.
센 강은 우리나라 작은 샛강과 같아서 한강과 비교하기에는 강폭의 크기는 어림없지만 세느강변을 따라 프랑스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세느강변을 따라 에펠탑,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퐁네프 다리, 노트르담 성당 등 세계적인 건축물이 줄을 지어 늘어져 있으면서 파리의 문화적 자존심을 뽐내고 있었다.
다음날 유럽 최고의 궁전인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보고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아내의 손을 잡고 파리 시내를 거닐다가 길가에 문이 열려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잠시 묵상하고 있다가 보니 우리처럼 길을 오가며 잠깐 들러서 기도와 묵상을 하는 현지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성당을 나와 아내와 팔짱을 끼고 파리의 도심을 배회하다가 스위스로 가기 위해 리옹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파리의 리옹역에서 스위스 로잔까지는 테제베(TGV)를 타고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인터라켄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산속으로 숙소를 찾아 들어가며 쌀쌀해진 날씨에 스산함을 느꼈지만 다음날 아침에 눈 덮인 융프라우에 오를 기대감을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유럽의 지붕이라 일컫는 융프라우에 올라서니 발아래 풍광에 감탄했다.
산악기차를 타고 하산하면서 용감하게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스키어들에게 비록 그들이 우리를 볼 수는 없더라도 찬사의 마음을 담아 엄지 척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패션의 도시 이태리 밀라노에 들어섰다.
어둠이 오기 전에 얼른 두오모 성당과 갤러리아 아케이드 그리고 스칼라 극장과 두오모 광장을 겉으로만 휙 둘러보는 것으로 밀라노 일정을 시작했다.
밀라노에서 하루를 보내고 로마로 향하다가 세계 7대 불가사리인 피사의 사탑을 들러 아내와 서로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서둘러 로마에 입성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로마에 몰려든 것 같았다.
다음날 교황님이 사는 작은 도시국가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에 입국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바티칸 궁에 들어서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 이르는 르네상스 문화가 배어 있는 작품을 지나서 시스타나 소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고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황선출의 콘큰라베가 열리는 시스타나 소성당과 지하로 연결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니 로마가 가톨릭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그 웅장함에 잘 나타나 있었다.
한참을 걸어 다니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과 베르나니의 청동 제단 그리고 열쇠를 든 베드로 상을 보고 성 베드로 광장으로 나왔다.
성 베드로 중앙광장에 우뚝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마주하고 있는 교황청 입구에는 교황청 근위대인 스위스 용병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내와 닷새 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로마의 상징인 성당들을 원 없이 둘러보고 트레비 분수를 찾아가 드디어 20여 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고 아내에게 고백했다.
이어서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관광하고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독일 퓌센의 작은 마을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더부룩한 배도 꺼지게 할 겸 아내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독일의 시골 마을도 우리나라 시골이나 마찬가지로 밤 9시도 안 되었는데 대부분의 집에 불이 꺼져있었고 상가의 불빛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와 호텔 방 벽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모기를 보고 지배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덩치가 꽤 큰 지배인이 모기약 대신 파리채를 가지고 와서 뒤뚱거리며 모기를 잡으려는 어설픈 행동에 한껏 웃으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날 퓌센의 백조의 성에 이어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을 둘러보고 뢰머 광장을 비롯해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관광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십여 일이 넘게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아내와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 그리고 살아갈 길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세상을 착하게 살아왔듯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너그럽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결임을 공감했다.
여기에 더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부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