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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stEdition Aug 12. 2023

기다림의 미학

이제는 스며들고 싶다

"매니저님은 왜 연애 안 하세요?"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팅 시켜드릴까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줄기차게 들었던 말이자 동시에 나조차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던 질문들.


2019년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약 4년간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다.

서른 다섯 인생 동안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못했던 적도 없었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서 내가 눈이 높은가 싶다가도 막상 호감이 생겼던 사람은 외모보다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물론 외모도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인연의 끈이라는 게 쉽사리 이어지던가.. 인연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성과 접점이 생기는 것 자체가 가히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무려 4개월가량 그저 지켜만 봤다.

순간의 감정으로 인한 일시적인 호기심이 아닐까 내 마음을 주기적으로 들여다 보고,

우연히 알게 된 생년월일로 나와 잘 맞는 사주 궁합인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두 번, 주말 데이트 한 번

삼프터 후 고백이 국룰이라고 하지만 혹여나 뻔한 클리셰로 비칠까 싶어 다음 만남을 기약했고

기어코 네 번째 만남에 마음속 고이 간직한 진심을 전한다.


"당신 사주를 봤을 때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고, 비호감인 사람이랑은 어떻게든 엮이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네 번씩이나 나를 만났다는 것은 내 마음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솔직한 마음을 알고 싶어요"


한동안 그녀는 말없이 웃기만 하다가 답한다.

"같은 마음이에요, 당신과"


10살의 나이 차이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도, 여자 입장에서도 그리고 사회적인 시선에서 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나이가 어려서 여자로 느끼지 못했을 까봐 내심 마음이 쓰였다는 그녀.

23년 가을 즈음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의 봄이 찾아왔다.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다짐을 그녀에게 전했다.

 

 1. 사랑이 우선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관계이기를

 2. 나로 인해 당신이 당신다워질 수 있고 당신으로 인해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관계이기를

 3. 서로가 우선순위가 아닌 각자의 삶이 우선순위가 되기를

 4. 중요한 가치관이 형성될 시기에 가스라이팅을 빙자한 그 어떤 부당한 감정적 요구도 하지 않는 관계가 될 것을

 5.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사전적 의미의 사랑을 할 것을


과거 연애에서 지키지 못했던 가치관 및 평소 켜켜이 쌓아둔 연애관을 조심스럽게 피력했고

이를 토대로 건강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이 관계는 내가 연애 욕구를 어느 정도 내려놓았기 때문에 관계가 진전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애 유튜브 채널에서 봤던 댓글 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깊을수록 고요하다. 애정이 깊어질수록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서있어 보라.

 그 자체만으로도 여자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건 다른 말로 '여유'라고도 부른다"


내 감정만 앞세우다 멀어져 버린 사람들

서로의 감정 보폭이 어긋나 끊어진 인연들

이러한 시행착오 덕분에 이제는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30대 남자가 되었음을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은 내려놓아야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마음속에 새긴다.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_이광호


P.S

아무리 생각해도 고백은 공격이 아닌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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