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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7. 2023

인생도둑

당구장에서 ~ 37

까맣게 잊어버렸던 당구가 내 눈을 멈추게 한다. SBS 방송이 개국한 뒤라 세상이 정신없이 변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TV에서 나비넥타이가 팔랑거리고 있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기지 바지를 입은 사람들. 손에는 큐를 쥐고 있다. 당구선수다. 소문으로만 듣던 외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믿기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월드컵 당구대회였다. 한때 저 속에 내 모습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부산에서도 PSB 방송국이 개국한 터라 부산연맹 회장의 수고로움으로 쓰리 쿠션 경기를 중계할 수 있었다. ‘국제 식 대대’ 한 대를 설치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카메라 앵글이 맞춰지자 선수들이 연습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회장과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니 선수들이 득점할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난감한 표정만 짓는다.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손쉬운 포지션도 제대로 맞춰내지 못하고 다. 당장이라도 감독의 ‘큐’ 사인이 날 것 같은 긴장감은 선수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도 잠시 내게 당구공을 건네주며 얼른 화장실에서 씻어오란다.


총알같이 달려갔더랬다. 새 천은 기름 성분 때문에 당구공이 제 각대로 표현되지 않고 축 미끄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회전 속도도 빨라 공 잘 다루는 선수들도 애를 먹기 마련이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난 고백이다. 비누로 정말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씻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공에 침을 뱉고는 골고루 문대어 가져갔더랬다. 때가 많이 묻을수록 미끄러짐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초보자도 다 아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뒷일은 기억에도 없다. 그렇게 ‘국제식 대대’를 세상에 내보냈던 것이다. 괴물같이 큼지막한 당구대가 엎드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여야지 감각으로나마 쳐보겠는데 눈 감고 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대대에서 치다가 중대에서 치면 장난감 같았다. 섬세한 맛을 느껴서인지 당구 좀 칠 줄 안다는 거들먹거림에 중대를 멀리하기도 했다. 구질 표현은 중대나 대대나 똑같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대를 들여놓은 구장도 몇 군데 더 생겨났다. 주로 두 대에서 세대 정도를 갖춘 규모로 중대와 혼합 구장이 전부였다. 요즘처럼 대대 전용구장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구선수라는 명목도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뜻을 모은 동호인들이 리그전을 펼쳤으며 툭하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교류전이 성사되었다. 비록 그들만의 리그였지만 시합 복장을 엄수하며 진지한 태도로 기량을 내뿜었다. 하늘 같은 에버리지 1점대를 부러워하며 ‘쉬운 공을 빠뜨리지 말자’ ‘길 공 잘 치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뭐 이런 조마조마한 구호를 외치면서~


최근 그 시절 선배를 TV에서 보았다. 2부 리그였지만 그 나이에 우승은 대단함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마침 당구장을 개업하신다길래 먼 걸음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더랬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변했는데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려나. 가물가물 기억의 모자이크를 맞춰 찾아뵀더니 “내 이 뭐 하려고 당구를 쳤는지” 하소연이 빗물처럼 쏟아진다. 돌고 돌아 결국 당구장이란다. 긴 예기가 필요치 않았다. 당구만 치다 내려와 버렸다.


오늘따라 비바람이 변덕스럽다. 태풍 비라 그런지 소리도 제멋대로다. 시끄럽게 쏟아지다가 잔잔하게 내리다가. 때로는 눈가루처럼 사뿐히 허공을 나는가 싶더니 이내 바람 따라 흩어져버리고 만다. 비껴가는 태풍과 함께 대지의 빗방울을 조심스레 훔쳐본다. 제까짓 것도 빗물이라고 미꾸라지 기어가듯 물고를 틀고 있다. 실개천을 향하는 모습이 마치 목적구를 향하는 내 공 같다. 빗물에 사유를 던져보니 바다가 종착지다. 얼마나 쪼그렸던지 다리가 저려온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고, 그 길 잃을까 쳐다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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