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인 강남 건물주 마 여사는 행여 계산대에서 누가 밦값을 낼지 우물쭈물하는 상황이 생기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내고말지, 하는 성격이었다. 돈도 없이 아이쇼핑하러 가서 빌빌거리는(?) 것을 제일 싫어하였고, 늘 가성비 좋은 것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성격이었다. 한번 돈을 쓰면 왕창 쓰는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마 여사가 취한 전략은 아예 백화점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집 앞이 바로 백화점이었건만, 마 여사는 생전 백화점을 가지 않았다.
(나) 그래도 세일할 때 가면, 가끔 가성비 좋은 물건도 있던데요.
(마 여사) 세일하는 물건, 나는 그런거 싫어.
(나) ……?!
마 여사는 이렇게 견물생심의 기회를 원천 차단해 버리곤 했다.
유혹은 저항하기보다 회피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 부의 본능
외식, 쇼핑 등 불필요한 지출을 좀처럼 하지 않는 마 여사였지만, 한 가지 아끼지 않는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건강’과 ‘젊음’을 위한 투자였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맨날 건강식품 이야기지, 뭐. 알부민, 공진단..
보니까, 젊었을 때부터 좋은거 챙겨먹고 몸 관리해온 애들은 확실히 달라. 피부도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고.
그러니 자기도 지금부터 몸에 좋은 거 좀 챙겨먹어. 그렇게 남편,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어느 날인가 마 여사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 여사) 요즘 왜 화장도 안하고, 그렇게 초라하게 하고 다녀?
(나) 잘보일 사람도 없는데요, 뭐
(마 여사) 자기는 돈 벌어서 뭐하려고 명품백 하나 없어?
(나) 제가 명품백 살 돈이 어디있어요~~ 돈 모아야죠...
(마 여사) 아니, 집도 있겠다, 돈도 벌겠다, 왜 못 사? 잘 차려입고 다니면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텐데. 자기 몸값은 자기가 높이는 거야…에그, 저런 부인 둔 남편만 복 터졌지, 쯧쯧.
워낙에 옷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도 좋아하는 마 여사는, 평소에는 여느 동네 아주머니 같이 소박하게 하고 다녔지만 어디 모임이라도 나가는 날이면 멋진 귀부인으로 변신해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사치스럽지 않지만 몇 가지 가지고 있는 명품 아이템과 썬글라스, 고급진 머플러, 악세서리를 잘 활용하는 패션 감각과, 때마다 손수 머리 염색과 네일 손질을 하는 부지런함도 지닌 마 여사였다.
꾸미는 것도 다 한때야...늙고나면 아무리 이쁘게 꾸며봐야 소용이 없어. 내가 늙어보니 그렇더라구.
비싼거 아니더라도 살 건 좀 사고, 즐기면서 살아.
언제는 젊고 건강할 때 나가서 돈 벌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젊을 때 예쁘게 꾸미고 즐기면서 살라고 하시네? 사실, 마 여사가 나의 영끌 투자에 반대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대출이 너무 많으면, 인생이 팍팍하고 재미가 없어져.
뭘 위해서 그렇게 살아. 헛욕심 부리지 말고, 몸이나 챙기면서 살아.
피부 관리랑 마사지도 좀 받으러 다니고.
자신의 멋진 외모와 웰빙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마 여사가 볼 때 매우 가치있는 소비였다.
그렇지만 마 여사 최고의 가치소비는 뭐니뭐니해도, 아들 유럽 배낭여행 보내주는 데 쓴 돈 5백만원이었다.
마 여사의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반에서 30-40등 할 정도로 공부를 통 안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 때는 어디 2년제 전문대라도 보낼 생각이었어,” 마 여사는 말했다. 그러던 아들이 고3 올라가면서 공부를 시작하더니 졸업할 쯤에는 반에서 10등대까지 성적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그래도 웬만한 대학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인서울 대학의 지방 캠퍼스밖에 갈 수 없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아들은 결국 대학 2학년 때 다시 반수를 해서 인서울 대학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이는 먹을대로 많이 먹었고, 뭐 하나 내세울 스펙도 없으니 어디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다들 속으로 걱정이었다.
그러던 아들에게 역전의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마 여사가 만들어준 것이다. 50대 후반에 9박 10일 패키지로 처음 유럽 여행을 다녀온 마 여사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큰 결심을 하나 했다.
빚을 내서라도 아들 유럽 배낭여행 보내줘야겠어.
너희들도 하나뿐인 남동생을 위해서 조금씩 보태.
직장에 다니던 마 여사의 딸들은 엄마의 엄명에 1백만원씩 보태야했고, 마 여사의 아들은 대학 3학년 여름방학 한달 반 동안 유럽 전역을 돌며 배낭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엄마를 닮아 극E인 마 여사의 아들은 가는 곳마다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알프스산에서 번지점프 하기, 바게트빵 하나로 하루 버티기 등 실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마 여사의 아들은 (마 여사의 계획대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영어에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영어실력을 더 키우겠다며 강남역 영어학원 새벽반을 등록해 다니는가 하면, 저녁에는 이태원 펍으로 출근하여 외국인을 접할 기회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스페인어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이듬해 연말, 마 여사의 아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보기 드문 이공계 전공자로서, 국내 유수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해외 곳곳을 다니며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다.
마 여사가 보내준 5백만원짜리 유럽배낭여행이 극E 아들이 잠재력을 펼치는 데 불쏘시개가 되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