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명절도 마찬가지다. 시댁과 친정의 상반된 풍경은...
# 너무나도 쿨한 시댁 풍경
시댁은 가족 모임시 무조건 외식을 한다. 비용은 무조건 1/n씩 부담이다.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삼 형제가 똑같이 갹출해서 그 돈으로 외식 비용을 내고, 부모님 용돈도 드린다. 외식 후에는 한 집씩 돌아가며 과일과 커피 등 디저트를 대접한다.(이건 자비 부담) 그러나 코로나19 이후부터는 디저트도 깔끔하게 밖에서 해결하고 있다.(따라서 1/n 부담) 제사는 없앤지 20년쯤 되었고, 김장도 안한지 10년쯤 되었다.
# 너무나도 인간미 넘치는 친정 풍경
친정은 아직도 명절날이면 엄마를 도와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간혹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누군가 한 명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구조이다. (시댁보다 식구수도 많은데ㅠ) 정 많은 친정에서 1/n 분담은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매번 "다음부터는 우리 똑같이 나눠 내자~ 아니, 차라리 매달 10만원씩 모임통장을 만들면 어떨까?" 말하지만, 정작 다음이 되면 다시 "이번엔 누가 내지?"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잘 안모이게 된다.
# 둘 다 겪어보니
1/n인 시댁이 훨씬 편하다. 처음에는 가족끼리 좀 냉정하다(?)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모일 일이 있어도 "이번엔 누가 돈을 내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가족들이 모이는 데 부담이 없다.
친정은 솔직히 부담스럽다. 음식 차리느라고 고단한 명절을 보내기도 싫을 뿐아니라, 물가가 올라서 집에서 해먹는다고 해도 돈은 돈대로 든다.(더 많이 드는 것 같기도...) 그렇다고 내가 쏠 것도 아니면서 외식하자고 제안하기도 그렇고. 왜 편리하고 깔끔한 1/n 계산법이 친정에서는 정착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시댁에서 1/n 계산법이 정착된 것은 팔할이 큰 형님 덕분이다. 전문직 큰 형님은 '허세'라고는 1도 없는 실용적인 성격이다. 결혼할 때에도 '강남아파트' 아니면 결혼을 안하겠다고 해서 시부모님이 자신이 살던 집을 줄여가며 강남에 신혼집을 마련해주셨다고 한다. 이후 아주버님과 계속 맞벌이를 하며 강남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나갔고, 지금은 강남의 고급 신축아파트 대형평수에서 자가로 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둘이 합쳐서 연봉이 수억은 될꺼야.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은근히 서운한 내색을 내비추곤 하셨다. 어쨌든 큰 아주버님댁은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잘 살았지만, 늘 똑같은 비용 부담을 제안했고, 우리도 그렇게 하는 편이 깔끔하고 좋았다.
요즘 신조어 중에 '허세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있다. 때로 우리는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허세를 부릴 때가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특히 근래 회사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지면서(ㅠㅠ), 누굴 만나더라도 내가 돈을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그렇게 나가는 돈이 한두푼이 아님을 깨닫고, 내가 돈을 내더라도 아깝지 않은 사람만 만나자, 하는 일종의 만남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쓸데없는 만남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은 실로 하나도 아까울 게 없는 사람들이니 내가 돈을 내야겠다, 생각이 먼저 든다.
예전에 가수 플라이투더스카이의 환희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한동안 집 밖에도 안나갔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통장 잔고가 없어졌고 너무 힘들었다...당시에 제가 돈을 많이 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만나면 늘 계산을 했는데 그게 버릇이 된 거다. 그런데 그 순간(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니 나도 힘든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서 얻어 먹는 것도 싫고, 신세 지기도 싫으니까 어느 순간 집 밖을 안 나가게 됐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416/0000287257
돈을 벌어도 모을 줄 모르면 밑빠진 독과 다름 없다. 쓸데없이 위세나 허영심 때문에 밥값 내고 다니지 마라. 돈 많으면 밥값은 당연히 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 없다. 남의 돈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에겐 밥값 몇 번 더내줘도 되지만,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까지 챙기면 내 돈이 나를 욕한다. - 돈의 속성
부자들에게는 '한턱'이 없다. 월급쟁이들이나 호탕하게 한턱내고 기분내는 것이다. - 부의 본능
며칠 뒤면 명절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쓰는 돈만큼 아깝지 않은 돈이 있을까?
무슨 N빵, 내가 다 쏠게
가족들에게 마음껏 허세 부리고 한턱 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