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집값 폭등기가 오기 전 나는 나의 멘토인 강남 건물주 마 여사에게, 당시 월세주고 있던 나의 강북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전세보증금에 대출을 보태서 학군지 소형 평수를 매수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마여사) 절대 안되지. 집 한채는 온전히 갖고 있어야지. 전세금 빼고 대출 많이 껴서 집사면 두 집 다 빈 껍데기 되는거야.
(나) 마 여사님도 젊었을 때 거의 50% 대출껴서 집 샀다면서요? 저는 왜 안되는데요? (억울ㅠ) 게다가 실거주 할건데요.
(마여사) 그 때랑 지금은 다르지. 그 때 나는 남편이 일반 월급쟁이 3배를 벌었고, 미리 갚을 계획을 다 세워놓고 대출 받은거였어.
하긴 당시 나는 집담보 대출이 2억이나 남아 있었고, 매수를 하려면 3억 정도의 추가 대출을 받아야 했다. 박봉 맞벌이가 총 5억 대출 받아 집을 한 채 더 사겠다고 하니 마 여사는 '헛욕심' 부리지 말라고 말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후 집값은 5억 이상 올랐으니 마 여사의 조언은 잘 들어맞지 않은 셈이다. 아마도 마 여사는 1억, 2억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던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시중에 돈이 이렇게 많이 풀려 서울 아파트값 평균이 10억 이상으로 폭등할 것이라고는 아예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투자에 대한 의견은 본인 세대의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 - 돈의 심리학
이후 보유세가 오르고 대출이자도 오르면서, 그 때 5억을 대출 받아 집을 한 채 더 샀더라면 지금 잘 버티며 살고 있을까, 종종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집값이 올라서 기분이 붕~ 떴을 테지만, 곧 내 연봉의 상당부분을 세금 폭탄 막는데 써야했을 테고, 갑작스러운 대출 이자 증가에 밤잠 못이루는 날도 있었을테지.
문득 사촌인 영미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20여 년 전인 결혼 초기에 약 8천만원의 종자돈을 모아, 대출을 조금 보태 강남의 주공아파트 10평대를 갭투자 해두었는데, 그 일대가 재건축 되면서 수십억대 부자가 되었다. 자신의 재테크 감을 확신하고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 언니는, 아예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에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투자에 나섰다. 이제 서울 집값은 오를만큼 올랐으니, 풍선효과로 수도권 아파트가 오를 것이라며 수도권 아파트를 보러다니더니만, 몇년 전 연말에 만났을 때에는 집을 10채나 샀다고 자랑을 했다.
(사촌언니)
갭투자로 사면 돈 진짜 얼마 안들어.
실은 내 친구가 사려다가 사정이 생겨서 못사게된
아파트가 있는데 혹시 너가 살래?
오를 게 확실해. 호재도 많고...
5천만원이면 60평 아파트가 네 것이 되는데.
순간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수중에 돈은 없었지만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5천만원이었고, 나 역시 왠지 그 아파트가 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사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먼저 마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보았다. 또 '헛욕심' 부리지 말라고 한 소리 들을 것을 각오하고서 말이다.
(마여사)
미쳤어? 아니, 그 외곽에 있는 집을 왜 사?
그것도 대형평수를...나중에 팔지도 못해.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였다. 마 여사의 쓴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결국 사지 않았고, 이후 그 아파트는 1억 넘게 올랐다가 금리가 오르면서 다시 원래 가격으로 되돌아왔다. 영미 언니는 안타깝게도 대출금리 가 오르고 갭투자한 집 상당수가 역전세를 맞는 바람에, 강남 신축 아파트를 급매로 팔아야 했다. 수도권 아파트 때문에 강남 아파트를 팔다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채는 소유권에 우선한다
- 레오달리오 <변화하는 세계질서>
돈은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집값 상승에 베팅하여 영끌 다주택자가 되기보다는 내가 가진 집 한 채를 온전히 잘 지키기를, 마 여사는 바랬던 것이 아닐까.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하더라도 돈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아야 다음에 올 제대로 된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박소연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
아무리 큰 이익도 전멸을 감수할 만한 가치는 없다. -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