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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Sep 20. 2023

주위 경단녀들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닐니리아 하고 있다면

아이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추석 보강 일정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이 학원은 놀라운 점이 거의 연중무휴라는 점이다. 설이고 추석이고 여름휴가고 태풍이고 뭐고 없다. 1년에 한 닷새 쉬려나? 그것도 이렇게 보강을 잡아 보충을 하니 연휴가 꼈다고 해서 학원비가 줄어들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는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 가야 하니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쉬지 않고 열일하는 K학원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 수학, 코딩 학원까지 전국구로 운영하는 이 학원도 워라밸을 포기하고 돈벌고 있는데, 애듀푸어에 노후대비도 안된 나는 연차수당을 포기하면서까지 놀고 있다니!




일찌기 나의 멘토 마 여사는 경제적으로 별로 여유롭지 않은데도 놀고 있는(?) 수영장 멤버들을 볼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기도 아이들 좀 키워놓았으면

몸 건강할 때 나가서 돈 벌어.

집에서 늴리리야 하고 있지 말고...


마 여사의 팩폭 발언에, 뒤늦게 일을 시작한 수영장 멤버들이 꽤 있다.



# 열정페이에서 연봉1억으로, '신 집사' 이야기


신ㅇㅇ 집사(46)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하루종일 교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실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영문과 출신으로 영어와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신 집사는 오랫동안 교회의 주보 제작과 책자 발간 등을 도맡아 했을 뿐 아니라,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소모임 간사로도 적극 활동하였다.때로는 신 집사의 봉사를 당연시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교회 지도부의 압박에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자기의 재능이 가치있는 데 쓰이고 있다는 데 늘 감사하였고, 이따금씩 주어지는 교인들의 칭찬 세례와 작은 선물에 감동하며 교회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문제는, 신 집사네 집에 노부모 뿐 아니라 대학생 딸이 둘이나 있었던 것이다. 곧 퇴직을 앞둔 신 집사의 남편은 아이들 등록금에, 부모님 병원비까지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한달에 단돈 이백만원이라도 벌어서 보태야지,

왜 하루종일 교회에서 그러고 있어.

그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야.


스스로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다 발언을 하는 마 여사에게, 신 집사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자기만 집안을 내팽겨둔 채 교회 일에 매달려 있었고, 다른 교인들은 모두 교회 일 뿐 아니라 각자의 집안 일이며, 재테크며, 아이들 교육까지 살뜰하게 챙겨 왔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신 집사는 뒤늦게 후회를 해보았지만 이미 경제적, 가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뒤였다. 신 집사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교회 식구들은 기도 밖에는 더 해줄 게 없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은 오롯이 신 집사의 몫이었다. 실로 힘겨운 몇 년을 견디어내고 자비를 털어 재취업 교육을 받고서야 신 집사는 가까스로 일을 구해 다시 가정을 일으켜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영어와 컴퓨터 실력을 살려 어학원 실장으로 일하며 연봉 1억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다. 신 집사는 나만 보면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마 여사님을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일을 통해 우울함을 이겨낸 고ㅇㅇ씨(58) 이야기


고 씨는 한 때 여러 채의 아파트를 지닌 부자였다. 대기업 임원 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생전 험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의 꼬임으로 묻지마 주식투자에 빠져들면서 결국 아파트를 다 날린 고 씨는, 남편과도 이혼을 하고 혼자 나와 살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고 씨는 자기 처지를 우울해하면서도, 감히 일을 하거나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못하고 수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마 여사는 고 씨에게 파트타임 일을 권했다.


하루 종일 뭐해, 반나절만 일해도 혼자 실컷 벌어서 쓰지.


마 여사의 조언에 따라 고 씨는 파트타임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고, 워낙에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성격인지라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했다. 지금은 간병인 자격증을 따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돌보다보니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게 되고 우울할 틈이 없다고, 고 씨는 말한다.




여전히 칼퇴와 워라밸이 더없이 소중한 직장인이지만 뒤늦게 일을 시작해 열심히 사는 주변 지인들을 볼 때면, 새삼 밥벌어 먹고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오전 3시 50분, 새벽 어둠을 뚫고 첫차가 출발했다. 지난 6일 이옥자(79)씨가 수락산역에서 8146번 버스에 올랐다. 행선지는 강남구 삼성역 무역센터. 청소 일을 시작한 지 30년 됐다고 했다...60대에 170만원 받았던 월급이 70대 들어 130만원으로 줄었지만, 그는 “이 일이 너무 좋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바로 보이니까. 이 나이에 움직여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게 얼마나 복입니까.”



사진: Unsplash의Jakub Kapus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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